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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섬 (roren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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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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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먼저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던 그 날 밤, 내가 남자에게 들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누가 듣겠어요.”
몇 달을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몇 가지 버전으로 연습도 했었다. 물론 남자의 대답도 나름대로 짐작 해 두었다. ‘나두요.’,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 그 버전들마다 어떻게 대답할지 연습도 해 두었다. 그런데 ‘누가 듣겠어요.’는 연습 항목에 없었다. 그야말로 허를 찌른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그저 ‘맹’한 얼굴로 그를 쳐다 보는 것 말고는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그는 농담을 날렵하게 날릴 줄 아는 사람이었고 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좋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진심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고백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도 그가 내게 마음이 있다고 옆구리를 찔렀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 조심스러워 하는 거라고, 니가 자신 있게 대쉬하길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망할 년들!)
그날 그가 ‘고맙지만 그 마음은 받아드릴 수 없다고’, 그렇게 짧게 끝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대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미안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횡설수설이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남자의 말이 진심인지 위기 무마용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의 나는, 좀 전에도 밝혔다시피 어렸고 순진했다. 그래서 그만 그의 수많은 문장들에 하나하나 느낌표도 붙이고 물음표도 붙여 저장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덕분에 그날로부터 족히 한 달간은 그 문장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이 생각, 저 생각을 참 많이도 해야 했다.
물론 그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백하자마자 끝나버린 관계가 남긴 것은 기나긴 쪽팔림 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너를 좋아해’보다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더 힘들어 한다는 걸. 왜 그럴까? 두 가지 모두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인데 왜 하나는 쉽고 하나는 어려울까? 여자는 아마 반대일 것이다. 너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죽기보다 어렵지만 너한테 마음 없다는 소리는 그보다는 쉽게 할 수 있다. 학습의 효과일까? 어쩌면 그럴 것이다. 어릴 때부터 대쉬와 밀어붙이기가 남자의 몫으로 인식되다 보니 남자의 고백은 격려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혹은 비율적으로 여자의 거절은 ‘그러려니’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격려했지만 거절당하면 그러려니... 이것이 남자와 여자의 고백 패턴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뒤집어지면 약간의 혼란이 발생한다. 아마 그래서 옛날 그 남자도 필요 없이 많은 말들을 내게 했을 것이다. 내가 남자이고 그가 여자였다면, 간단하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우리가 학습한 고백 패턴이 아니었던 탓에 그는 그토록 많은 말들을 늘어놓아야 했고, 그것으로 인해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길고 긴 밤을 슬퍼해야 했던 것이다. 돌아보니 모든 것은 학습 때문이었던 것이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우재(설경구)와 연수(송윤아)는 대학동창으로 만났다. 연수는 우재를 짝사랑하지만 우재는 그걸 모르고 다른 여자에게 실연당한 상처를 제대로 오바로크질 하지 못해 군대를 가버린다.
영화의 중반이 넘도록 전개되는 이야기는 연수가 우재를 맘에 두었다가 자신의 마음을 끝내 표현하지 못해 그 마음을 거두었다가 10년 만에 재회하는 바람에 다시 펼쳤다가 결정적으로 우재와 하룻밤을 보낸 후 그가 날린 ‘미안해’ 때문에 또 다시 거두는 것이 모두 차지한다. 막판에 이르러서야 연수의 존재감을 제대로 실감한 우재가 그녀를 잡기 위해 택시를 따라 뛰게 되고 연수는 거두었던 마음을 다시 펼치려는 듯 택시에서 내려 어느 술집에서 겸상을 받는다. 두 사람의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는 건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이르러서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우재가 십 년 만에 연수에게 날린 ‘미안해’는 ‘누가 듣겠어요.’처럼 모든 것을 함축하는 말이었다. 평면적으로는 하룻밤을 보낸 다음 약간 들떠 있던 연수에게 자신의 행동이 실수인 양 늘어놓는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지난 10년간 자신을 향해 들떠 있던 연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행동에 대한 총체적 죄책감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고 사귀고 물고 빨고 하는 모든 관계들은 그저 몇 마디의 단어들로 연결되고 함축되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해요-누가 듣겠어요’처럼 ‘사랑해-미안해’, ‘결혼하자-니미럴 뽕이다’ 같은 연결고리들이 오랜 세월과 공간에 빨랫줄처럼 늘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수 역시 선방을 누가, 어떻게 날리느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래서 학습이 무섭다. 덕분에 몇 년을 속앓이만 했다. 좋아해, 사랑해 따위 빨래 줄에 널어 넣어 놓으면 쪼글쪼글해져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마음속에 밀어 넣어 버리면 계속 부풀어 올라 애를 먹인다.
연수와 달리 나는 초년에 망신을 당하고 나니 그 다음부턴 좀 쉬워졌다. 긴가 민가 아리송하게 만드는 남자에게는 주저앉고 찔러 보았다. ‘좋아해-아 미안’ 하면 그래 니미럴 뽕이다 하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이력이 붙어 아무에게나 고백을 시도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도 된다. 쥐며느리에게도 대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고 말도 너무 많다. 너무 많이 걸면 빨래줄만 쳐질 뿐이다. 나의 횡설수설이 그녀 혹은 그의 마음을 구원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영화 속에서 내가 찾은 최고의 말은 우재의 조정 선배가 그에게 던진 말이다.
“길게 생각할 거 없다.”
이 대사는 우재에게 일자리를 던져 주면서 던진 말이라 사실 연애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연수에게 들려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길게 생각할 거 없다. 길게 생각하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어느 선전에서도 나왔다시피 생각이 많으면 스탭이 엉킨다. 스탭이 엉키면 넘어지게 된다. 결국 내 무릎에 피멍을 내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란 소리다.
이 선배는 영화 말미에 한번 더 등장해 결정타를 날려 주신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그렇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길게 생각할 거 없이 선방을 날려주면 된다. 익숙한 학습의 패턴 따위는 잊어라. 상대가 무슨 대답을 던져 줄지는 고민할 필요 없다. 설사 예상치 못한 실망스런 대답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누가 듣겠어요’보다 더하겠는가?
댓글목록
작은섬님의 댓글
작은섬 (roren2003)아! 퍼온글입니다..
dhlsths님의 댓글
dhlsths (dhlsths)우와 진짜 글이 너무 맛깔나네요.. 어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