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34
- 한싱커플카페
- 안다스 이야기...
페이지 정보
- 리원 (cynthia21)
-
- 1,008
- 0
- 2
- 2005-04-12
본문
제 남자친구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어요.
그는 중국계 싱가포리언 입니다. 79년 생, 저는 빠른 84^^*
안다스는 2월 달에 한국에 왔다가 다시 싱가폴로 돌아가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5월 중순에 마지막 학기가 끝나면 한국에 잠시 들릴 거예요.^^* 아직 군대가 6개월 남아서 졸업하고 군문제 부터 해결해야 하네요. 그렇지만 싱가폴 병역은 우리 나라와 처럼 힘든게 아니라 걱정은 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요. 내년 6월에 졸업합니다. 졸업 후 진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고요...
외교통상부에서 주최하는 한아세안 청소년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 열흘 간의 행사 동안 반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아프고, 고백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2월 24일이 우리의 기념일이니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네요...
아세안 10개국의 청소년을 초청하는 한아세안 행사에서, 그는 싱가폴 참가자 였습니다. 저는 그당시 3년 정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열흘의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날 : 새벽에 공항 영접을 나가느라 잠은 3시간 정도 밖에 못 잤지만 10년 만에 입어보는 한복과 11개국 청소년과 함께 하는 오리엔테이션에 푹 빠져 너무나 설레였던 때입니다. 친구와 함께 홀을 돌아다니다가 의자에 앉아있는(비행 후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곤할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한 외국인의 어깨를 한번, 두번, 꾸욱~ 하고 안마를 해줬습니다. 뜬금없이..말이죠.^^;; 당황하며 깜짝 놀라는 그의 얼굴과... 아, 예의가 아니지... 하는 생각에 더 놀랐던 나... sorry... 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물론 괜찮다고 했지요.
그가 안다스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둘째 날 : 개회식에서... 그는 싱가폴 대표로 인사를 했었습니다.
셋째 날 : 정동극장을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과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달리 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던 저는, 잘생긴 그래서 앉기 꺼려졌던 그 사람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때가 처음 그를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타이 식당에서 굉장히 크고 멋진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그... 프로냐고 묻자,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싱가폴 일행 중 진짜 프로가 있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그.(사실 안다스는 프리랜서 사직 작가 였습니다. 겸손이 지나치더라고요.^^;) 그 무거워 보이던 가방이 카메라 전용 가방이라는 것은 다시 버스에 타고서야 알았습니다.
넷째 날 :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 싱가폴 참가자가 저에게 묻더군요. 그가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고...... 하하... 사정없이 바람에 날려 헝크러진 머리카락과 단체복이었던 두꺼운 파카를 입은 상태였음에도 당연히 받아들였습니다. 예뻐보이고 싶은 맘에 어색한 포즈를 취하던 그 때, 미얀마 친구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오더군요.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중요한 가방이라고 영어로 떠듬떠듬 말하던...안다스가 본당에서 검은색 지갑을 본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안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후, 밖을 찾아 다녔습니다. 밖에서 잃어버린 거라면 더 큰일이니까요. 이곳 저곳 돌아본 후 다시 돌아오니 그는 다행이 지갑을 찾았더군요. 기뻤습니다.
다섯째 날 : 얼떨결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정상 회의(?)... 쉬는 시간에 객석에서 엽서를 보고 있더군요. 뭔가 멋진 엽서인가보다..하면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서미트가 끝나고 친구가 엽서 한 장을 보여주며 자랑하더군요. 안다스가 줬다고...... 그제서야 그 멋진 엽서들이 안다스가 찍은 사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안다스가 사진집을 내밀면서 원하는게 있으면 가지라고 하더군요. 사진에 찍힌 여러 나라의 풍경들... 각 사진마다 정성스러운 편집과 글귀들... 회의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 우울했던 저는 그가 전문적인 사진 작가라는 것과 20여 개국 넘는 나라를 여행다녔다는 사실에 묘한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너무 해맑게 웃는 여자의 사진이 그의 여자친구라는 말을 듣고 기운이 빠지더군요. 그가 사진을 고르라고 했기에 버섯과 고양이 사진을 골랐습니다. 그가 더 맘에 드는 거 없냐고 더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망설이다가 그의 사진집 앞에 풀로 붙여 있던 그가 찍힌 사진을 가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황하다가 붙여 있던 그 사진을 조심스럽게 떼어 주었습니다. 이 걸로 됐어... 라고 내 맘 속에 어떤 말이 울린 듯 했습니다.
후에, 한 한국인 참가자 언니가 "어, 이 사진 내가 먼저 달라고 했는데..." 라고 하더군요.
자정까지 부채춤 연습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그 복도에 안다스가 앉아 있었습니다. (강원도로 옮긴 숙소는 복도식 콘도 였거든요. 운좋게도 그와 저의 방은 한 라인에 있었습니다.) 복도에 앉아서 노트북을 쓰고 있던 안다스... 룸메가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져가서 못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프론트에 전화할까 했는데 그는 그냥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그가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월정사에서 찍은 제 사진 중 정말 맘에 드는 게 있다고 하더군요. 우울한 기분을 감추려는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피곤하고 슬퍼보이던 사진을 그가 찍었었습니다. 그는 그 사진을 보면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사진의 소녀에 대해 말을 하더군요. 우습게도 제 모습이었지만 그 사진 속 소녀를 질투했습니다. 그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정상 회의의 국가 리더, 늦게까지 진행된 부채춤 연습, 며칠 째 서미트 준비와 이런 저런 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그 피로감 속에서 i hope your boyfriend takes care of you well.... 이렇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슬프게 들리던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한 번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했습니다. 방 문 앞까지 와서도 can i hug you only once? 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더군요. 결국 입 밖에 나온 말은 good night 이었습니다.
여섯째 날 : 스키를 타는 날이었습니다. 동남아 친구들 중에는 눈을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스키를 가르쳐 주며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전날 밤 너무나 똑똑해서 무서웠던 서미트의 각국 대표들과도 허물없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때 너무나 능숙하게 스키를 타는 안다스가 보이더군요. 흑~ ㅠ_ㅠ 도대체 쟤는 못하는게 뭐야... 스키 가르쳐주며 친해지려던 생각은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눈 처음 보는 친구들과 같이 스키를 타려니 당연히 늦어질 수 밖에 없었고 강사를 맡았던 언니의 마지못한 허락을 받아 자유를 즐기려던 순간 안다스가 다가오더군요. 스키 얼마나 잘 타냐고... 중급자 코스 가서 같이 타지 않겠냐는 말에 망설였습니다. 스키장은 두번째지만 겨우 초급자용 슬로프 세번 밟아본 경력이 전부...ㅠ_ㅠ 그렇지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무한 넘어짐의 쪽팔림을 감당해야 했지요. 리프트에서 그가 내 장갑 안에 핫팩을 넣어주더군요. 준비성도 철저한... 그래서 얄미운 그였습니다.
저녁에는 이른바 명랑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그와 같은 조가 되었습니다. 총 다섯 번의 게임에서 저는 그가 운동도 잘하지만 무지 똑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게임 설명을 듣고 바로바로 최고의 작전을 짜더군요. 사소한 일이지만 머리 좋은 녀석이란게 티가 나더라고요. 정말로 그 덕분에 5전 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날 밤 그의 방을 방문했을 때 그는 노트북으로 레포트를 쓰고 있었습니다. 여행기 였는데, 그 날의 날씨와 몇 걸음 걸었는지까지 자신만의 기호로 아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더군요. 그 날 있었던 일과 그때 그때의 감정까지... 한국에 오기 전 사전에 공부까지 해서 정리해놓고...
정말 멋진 녀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레포트 어디서 쓰라고 한거냐고 물으니까 그냥 자기 자신에게 제출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뛰던 가슴이 레포트 표지에 with us. 라는 표시를 보고 굳어졌습니다. 그는 그의 여자친구와 3년 정도 사귀었고 같은 학교 같은 과에 같은 클럽 이더군요. 그것도 저랑 같았습니다. 그녀와 같이 여행도 다니고....... 너무나 아름다운 창가의 식탁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득담고 웃으며 식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그 때 제 가슴 속에... 더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이상 좋아하게 되면 헤어나오기 힘들겠구나..싶었습니다. 이 날부터 남자친구에게 매일밤 하던 전화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날 : 아침 시간에 썰매를 탔습니다. 빙등제도 가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지갑을 잃어버린 거 같다고 하더군요. 방에 놓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그에게 방을 확인해달라고 하고 저는 썰매장으로 갔습니다. 솔직히 기뻤습니다. 제가 한국인 이기 때문에 그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지갑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나쁜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기를...... 지갑은 방에 있었고 제게 미안해 하더군요. 오후에는 각 나라 음식을 만드는 행사가 있었어요. 한국 음식을 만드는 방은 재밌게도 그의 방이었어요.(각 방에 10명씩 지냈거든요.) 재료가 늦게 도착해서 음식 준비가 힘들었습니다. 싱가폴 팀에서 음식을 만들던 그를 볼수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더이상 그에게 다가가면 안된다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음식이 완성되고 홀에서 각국 음식 심사가 있었습니다. 저도 정리를 마치고 뒤늦게 내려갔습니다. 그가 반갑게 인사하더군요. 내가 만든 음식이 뭔지 먹어보겠다고... 그게 너무 슬펐습니다.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밖으로 나와 벽에 기대서서 한참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피곤했지만 자고 싶지 않고.. 음식을 만들었던 그의 방으로 돌아와 엉망이 된 곳을 혼자 치웠습니다. 열쇠를 가지고 가버려서 불도 켜지지 않는 곳에서 말이죠. 바닥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데 방 주인들이 돌아오더군요. 청소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도 왔어요. 저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부자연스러워 보였을 거예요. 전을 부쳤던 바닥을 걸레로 닦고 나서야 일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내일 있을 각국 문화 축제 준비로 부채춤 연습을 하러 갔어요. 그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오면서 보러 가도 되냐고 하더군요. 기뻤습니다. Im not sure but... 라고 하는데 그가 알았다고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지 않더군요. 연습 끝나고 12시 쯤 보자고 했습니다. 부채춤 연습 하는 동안 제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피로는 쌓여 있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고 연습은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혼자 울기도 했고요.
겨우 연습이 끝나고 그의 방으로 갔지만 새벽 3시에 깨어있을리가 없겠지요. 그의 방 앞 복도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간혹 술 마신 친구들이 지나가더군요. 그렇게 5시까지 있다가 방에 들어와서 죽은 듯이 잤습니다. 이제는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덟째 날 : 몇 시간 못 잤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이제 웃으면서 그를 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리허설을 하고 그에게 약속한 사진을 가져다 주려고 그의 방에 갔습니다. 노트북이 보이더군요. 일기를 훔쳐 보는 것처럼 그의 레포트를 읽었습니다. 첫 날 비행기 안에서 여자친구가 준 초컬릿을 발견하고 기뻤다는 이야기(발렌타인 데이였지요), 이순신 이야기, 일제시대 정리, 게임강국 이야기... 그 중 월정사에서 그가 나의 사진을 찍어줬던 일이 적혀있었습니다. 가지런히 장갑을 벗고 추운 날씨인데도 모델에 응해 주었다고... 그 때 미얀마 남자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망설이지 않고 눈밭으로 지갑을 찾으러 가더라고... 그리고 그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열심히 찾아주는 모습에 너무 미안했다는 글과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샀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리고 어제 왠지 내가 슬퍼보였다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때 그가 돌아왔습니다. 카메라를 가져와서 연결해 보려고 했다고 말을 했지요. 멀티 USB를 가져오더군요. 준비성 철저..-_-;; 도대체 10일 여행 오면서 안가져온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내게 작은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음.. 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불빛 같은 거? 참 예뻤어요. 지갑 찾아준 거에 대한 보답으로 샀다고 하더군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마음 정리했으니까.. 한결 가벼웠습니다. 최소한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할수는 있었으니까요. 그가 어제 무슨 일 있었냐고......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you cant... 라고 했습니다. 바보지요? 자기 때문인데... 너만은 절대 나를 도울 수 없어...
드디어 부채춤 공연..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던지.. 그를 위해서 춤을 추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에 올라섰을 때 그가 카메라를 들고 서있더군요. 무대는 너무 짧았습니다. 5분의 시간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객석으로 돌아와서 그와 가까운 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그는 다른 싱가폴 참가자와 내내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마음 정리 했다면서도 질투를..했지요.^^;; 나중에 그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 그의 댄스 파트너 란 걸 알았습니다. 멋진 뮤지컬 댄스가 끝나고 그를 마중 갔습니다. 잘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어두운 극장 뒷편에 서서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너무 즐겁고 화려했던 각국 문화 축제 공연 후, 댄스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와 나는 미리 약속했던대로 댄스 파트에서 몰래 나와 야간 스키를 타러 갔습니다. 한국인 참가자들 몇 명과 함께 단체로 빌렸어요. 사람이 거의 없는 스키장. 텅텅 빈 리프트... 단 둘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굉장히 추웠지만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서 내려오는 중간에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냥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은 강원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밤새 놀기로 약속했었지요. 겜방에서 스타를 하고 사무실 가서 먹을 것을 뺏어오고 그의 레포트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계단에 앉아서... 그가 나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나 둘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나를 지켜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바보...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이 있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심지어 당장 결혼할 생각까지 했다고... 그냥 웃었습니다. 그가 말도 안되는 얘기를 감정적으로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가슴 한구석이 정말 아팠습니다. 나도 그랬다고... 나도 여러가지를 생각했었고... 나도 굉장히 아팠다고... 바로 어제까지. 지금은 놀랄만큼 아무렇지 않다고.. 단지 하루만에 정리될 정도의 감정 밖에 안된다고... 너도 그럴거라고... 방에 돌아가면 내 사진 지우고 나에 대한 글을 지우고 나면 얼마가지 않아서 그 감정도 사라질 거라고...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을 했지요. 여자친구를 사랑하냐고 묻자, 확실히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믿냐고 하니까 믿는데요. 그녀도 너를 믿느냐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게 사랑이라고... 참 바보 같지요? 저는 제 감정을 정리했는데 그 다음날 고백을 받다니... 힘든 길을 걷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든 길을 걷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안정한 감정으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았고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아지 같이 젖은 눈을 한 그 사람을 억지로 외면하고 방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현관에 풀석 주저앉아 조금 울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 때가 새벽 6시 쯤 된 거 같아요. 현관 문을 열었습니다. 이미 돌아갔겠지... 그는 그 자리에 같은 눈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하하..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억지로 보내놓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작정 욕실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잤습니다. 거의 정신을 잃는 것처럼...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군요. 방 친구들이 깬 걸 보니 8시 쯤 이었던 거 같아요. 급히 샤워하고 나왔습니다.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밖에서 누가 날 찾는다고 하더군요. 그가 날 보고 반가운듯이, 화난듯이 어디갔었냐고 물었습니다. 계속 방에 있었다고... 그가 새벽에 나를 찾아왔나봐요. 방 친구가 나 없다고... 그 소리에 그는 찬 새벽에 사방을 돌아다니며 나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안도하는 모습... 무슨 말을 하면 좋았을까요?
아홉째 날 :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와는 아쉽게도 같은 버스는 아니었습니다. 혼자서 참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더군요. 언니 같았던 베트남 친구에게 조용히 얘기했습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그와 나는 서로 3년 사귄 애인이 있다고... 그런데 서로 사랑하게 됐다고... 그의 터무니없는 고백이 눈물나게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그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조용히 얘기해 주더군요. 시간을 가지라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무조건 피하지도 말고 무조건 얽매이지도 말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마음이 위로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에게 최소한 한 달 이상의 시간을 갖자고... 어차피 떠나면 못 볼테니까 그렇게 잊혀지만 아무 인연도 아닌 거겠지... 그에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날 저녁 폐회식 날... 한복과 정장을 입고 손을 잡고 홀을 다녔습니다. 마치 약혼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내일 떠나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지막 밤... 다들 밖에 나가는 분위기더군요. 저도 안다스와 지하철을 타고 밤거리로 나갔습니다. 뭐할까.. 하다가 같이 영화보려고 무작정 충무로에 갔다가 명동까지 걷고... 영화 한 편 보고 편의점에서 라면도 먹고 지하철 기다리면서 이야기 하다가 첫 차 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 그의 비행기는 오후 4시 쯤 떠납니다. 룸메이트였던 라오스 친구는 일찍 떠나서 방이 비었습니다. 그와 한 침대에서 잤어요. 서로 너무 피곤했으니까... 정신없이 잤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서로 관계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중한 감정을 그런 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항까지 가는 버스에서,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가지를 가르쳐 줬습니다. 서로의 별자리, 띠... 가족 이야기... 하하 손바닥이 그림으로 가득찼을 때 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가 손에 그림을 그리더군요. 그 때까지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내 손의 그림이 ... 지금 이대로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씻지 않는다고 해도 다시 만나기로 한 여름방학까지...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단지 하루나 이틀이면 이 그림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4개월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지더군요.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잘 버텼는데......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간단한 음식을 사먹었습니다. 그의 비행기표를 제가 가지고 있었는데 잠시 잠깐 사이 표가 없어진 거예요. 분명 식당에 들어왔을 때는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없는 거예요. 5분 정도의 시간 새에... 당황하는 나를 그가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보고는 재발권 하러 가더군요. 그는 저 덕분에 가장 나중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탑승구에서 어서 가라고..서두르라고 하는 내게.. 다시 돌아와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면서 자기 말 똑똑히 들으라고... 내가 가고나면 아까 산 점심을 먹고 집에 조심해서 내려가고 학기를 잘 보내고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정신이 멍하고 꿈처럼 느껴졌어요. 무작정 공항 제일 끝으로 갔습니다. 그의 비행기를 보고 싶어서.... 그의 말대로 샌드위치를 먹고 의자에 누워서 한동안 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사라진 비행기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더군요. 식당으로 다시 가서 기계 하나를 들어낸 후, 틈새에 끼인 그의 표를 찾았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표에 적힌 그의 이름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줬습니다. 서점에 가서 싱가폴에 관련된 책을 사고... 다시 비행기를 보려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4시간 정도를 혼자 그렇게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필리핀과 라오스 친구를 배웅하는 한국인 참가자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3월, 그리고 그 후......
국제전화카드를 샀습니다. 전화를 해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당장 MSN에서 만났어요. 음성 채팅을 위한 해드셋을 사고 웹캠을 사고...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했고 더 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여자친구에게 모든 사실을 솔직히 얘기하고 이별을 고했습니다. 힘들었겠지요. 그도 그녀도...... 저도 남자친구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 3년 사귀는 동안 지금 처음으로 진심을 보여줬다고 고맙다고 하더군요. 여행 가서 매일 밤 전화했는데 내가 안다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에게 전화할 수가 없었지요. 그도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배려해 준 것인지... 자존심인지... 그는 더이상 제게 연락하지 않습니다. 안다스와 제게... 그와 그녀를 ,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상처준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싱가폴, 그의 누나 집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5월 중순에 학기 마무리 하고 한국으로 여행을 온다고 합니다. 너무 기쁘게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도 저도 시험기간... 항상 컴퓨터로 서로를 바라보며 시험 공부를 합니다. 아마 그는 지금 내가 공부 하는 줄 알고 있을 거예요.^^"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졸업 후의 진로입니다. 경영학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고 돈을 쏟아붙는 유학을 할 정도로 부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배 쫄쫄 굶으면서 하는 유학은 자신 있습니다.^^;;) 안다스는 조심스럽게 졸업 후 싱가폴로 와달라고 합니다. 당장 좋은 직업을 구하기는 힘들겠지만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나면 좋은 곳에 취직이 될거라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은 1년 반의 시간 동안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놓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현대에서 일하고 계셔서 오래전부터 현대자동차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취직해서 싱가폴 자회사로 가는 것은 힘들고 가능하더라도 나이 40쯤 되어야 겠지요? 싱가폴 내의 한국 기업에 취직하려면 싱가폴 대학 학위가 있어야 할텐데... 회계사 자격증을 따려고 알아봤는데 영국 특허 회계사 ACCA는... 거의 불가능의 수준을 요구하더군요. 최소 수습 기간 3년~5년^^:; 어떻게 하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까... 과연 그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기본이 되는 영어와 중국어, 국제 행사 참가, 학점 및 장학금 관리, 현대자동차에서 하고 있는 사무직 알바......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벅차네요.
아무것도 없이 그 하나 믿고 따라가서 짐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 싱가폴을 가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아봐야 겠습니다.
10일은 너무 짧았지요. 사랑이나 믿음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설레임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감정이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해서 도저히 덮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와의 감정을 소중히 키우고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댓글목록
입큰 개구리님의 댓글
입큰 개구리 (emgemmagil)
리원양, 아주 아름다운 추억을 이렇게 글로 읽을 수 있어서 좋군요. 싱가폴 사람과 가약을 맺은 많은 분들도 책한권을 엮을 만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들이 많죠. 생각보다 많이 성숙한 아가씨로 느껴지는데 그분과 고운 사랑을 만들어가시고 무엇보다도 같이 있기위해 리원씨의 career를 포기하는 무모한 짓을 절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리원씨는 아직 너무 싱싱하고 젊은 꿈을 펼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진정한 사랑은 기다릴 줄도 알며 서로를 키워주니까요.
가슴에 담아두기 힘든일이나 마음이 무거울때 글올리세요.여긴 선배언니들이 아주 많으니까.ㅎㅎ 행복하시구 공부 열심히 하세요.
플라타너스님의 댓글
플라타너스 (littlepiggy)
그렇지요. 그 러브 스토리!!! ^.^
리원양, 그런데 실제 삶은 러브스토리와 정말 많이 다른 거 랍니다.
사랑에 모든 걸 걸지는 마세요. 크고 넓게 보시고 자신의 모습을 잘 가꿔 나가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