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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이야기-(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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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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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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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인연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11월 3일, 오늘이 손자와 함께 싱가포르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무엇보다 실감하는 것은 빠른 세월이다. 눈 깜빡할 사이 365일이 세월이라는 이름 뒤로 사라져 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은 빠르고 할 일은 많으니 이 어찌된 인생의 심술인지 알 길이 없다.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면 할수록 시간을 아껴 쓰지 못한 어리석음에 자탄의 한숨만 절로 나온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젊은이들에게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세월은 결코 인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흔히들 ‘오늘이 마지막이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라고 이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틀에 박힌 일과를 끝내고 나면 세상만사 귀찮아지는 때도 있고 정한 목표도 내일로 미루다가 하루를 까먹기도 한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일흔 넘은 나조차 그런데 젊은이들이야 예사로운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시간을 아껴 쓰고 쪼개 쓰는데 익숙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 시간활용법을 소홀히 하였고 그래서 예사롭게 여겨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과거다. 그러나 이 나이에 후회한들 뭐하겠는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살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싱가포르생활에서 그랬다.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지 못했다는데 자책한다. 손자 거두기가 아무리 빠득해도 시간표 하나만 잘 짜고 관리하였더라면 더 많은 문물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여생을 더욱 영글게 살 수 있는 토양이 되었을 것인데 말이다. 시간이 없다거나 내일로 미루거나 때로는 그런들 뭐하겠느냐는 좌절감이 스스로를 나태의 구렁에 밀어 넣고 자포자기라는 패배의 시나리오를 연출하게 했던 것이다.
실례로 중학교 때부터 습작하던 시 쓰기도 시간 틈틈이 계속하였더라면 모르기는 해도 지금쯤은 유명작가 반열에 올라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서 후회한다. 최근만 해도 매일 한 건씩의 원고정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더러는 시간을 느긋이 즐기라는 사람들도 있다. 서두르고 바쁘다보면 실수가 많고 남에게 외려 본의 아닌 피해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사실 그 또한 전혀 근거 없는 틀린 말이 아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다. 또 세월이 좀먹느냐는 말도 있다. 농담조의 말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심오한 뜻이 숨어있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사 어디 설친다고 모두 이루어지느냐는 것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그래서 낙천이 있고 시와 술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당돌함과 여유 없는 마음가짐으로 늘 쫒기는 생활을 찬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에서나마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시간을 보내라는 이야기다. 시간은 세상 누구에게도 특혜가 없다. 똑 같이 배정돼 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쓰는 사람에 따라 그 효과와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행복과 불행의 시발이 되기도 한다. 시간은 곧 세월이기 때문이다. 알찬 씨앗을 차곡차곡 심고 거둔 사람과 시간만 바라보다 때를 놓친 사람과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내 손녀 이야기를 예로 들기가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래야 이해가 쉽게 될 것 같아 자랑 아닌 자랑을 해야 하겠다. 내 손녀는 유치원 때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3학년까지 보통 정도의 성적이었다. 싱가포르 유학 2년 반 동안도 두드러진 실력을 들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귀국하여 6학년에 재입학을 하였지만 국어와 사회 등 싱가포르에서는 배우기 쉽지 않았던 학과는 뒤질 수밖에 없었다. 영어 하나 빼고는 겨우 중간이거나 그 이하였다. 국어점수 20점이 단적인 예다. 본인의 실망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도 긴장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다가 적당한 시기에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하려던 당초 계획을 내가 반대하여 귀국한 터라 내 마음은 더욱 초조하고 불안했다. 손녀에게도 그렇고 아들 며느리에게도 미안스러웠다. 그래서 한 때는 다시 싱가포르를 되돌아갈 요량으로 싱가포르의 화총국제학교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만큼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 때도 나는 말렸다. 사춘기를 맞은 나이에 혼자 남녀공학의 기숙사를 사용하는 여건과 분위기가 영 싫어서였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접었다.
손녀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시험을 보았을 때 성적은 1학년 200명 가운데 고작 70등이었다. 실망이 컸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외국어고등학교 중학생 영어 영재반에 수석입학 하였다는 것이 그나마 희망의 끈이었다. 아마 그것이 계기가 되어 꼭 1등을 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동기부여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아래층에 살고 있는 남자 동기동창의 전교 1등이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 밤낮 가리지 않고 국어 수학 등 부진했던 과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식탁에서도 책을 보면서 밥을 먹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제 엄마도 아빠도 꼭 1등하라고 독려한 적도 없다. 공부에 대해 채근하지 않았다. 오직 손녀 스스로 목표를 세웠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오래가지 않고 결실을 맺었다. 그 다음 시험에서 7등을 했다. 무려 10단계를 단숨에 뛴 것이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놀랬다고 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시험에서는 반 1등과 전교 3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선생님이 ‘너는 대기만성형이다’고 말했단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자 담임선생님이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석해 주더라며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손녀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나는 ‘자신을 믿어야지 자신을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치듯 캐물었다. 손녀는 스스럼없이 ‘내가 나를 믿으면 자만에 빠진다. 그러면 뒤처진다. 그래서 믿지 않고 자신을 채짓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깜찍한 역발상인가. 그야말로 철학자의 명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내는 항상 ‘공부는 머리 좋은 아이보다 노력하는 아이가 더 잘 한다’고 말한다. 그 또한 실체적 명언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교훈을 손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회생활 역시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 것이다.
사실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의 중요성이나 세월의 아쉬움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맺어진 인연들에 대해서다. 인연 역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퇴색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한 두 해 전의 만남과 헤어짐은 외려 더 생생하고 또렷하다. 싱가포르가 늘 내 마음에서 홀연히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최근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정이 더욱 그리워서다. 비록 2년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맺은 인연은 적잖았다. 싱가포르에 들어가자마자 콘도의 소음 때문에 애를 먹인 주싱가포르대사관의 양경희님, 우리 아이들의 가디언 손우락 사장, 내 손주들을 부모처럼 돌봐주었던 싱하숙의 권숙진 장로 내외분, 아직도 나의 하찮은 글을 읽어주고 격려하여 주는 모든 분들도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귀한 분들이다.
독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준 ‘피닉스’님, 동참해 주었던 로사리아님, 민아님, 맛깔님, 시작님, 꼭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들이다. 싱가포르를 떠나오던 날 창이공항까지 전송 나와 주었던 피닉스님과 로사리아님의 뜨거운 인정은 아직도 감동 그 자체다. 아내의 교통사고 당시 정성스레 도와주었던 효서, 소연, 선우, 시경 엄마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싱가포르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독한 한 노인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어준 한인회 봉세종 회장님과 몸살림운동의 윤정욱님은 지금까지 인정을 나누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특히 봉세종 회장님은 나의 싱가포르 전 생활을 통해 가장 인격적인 대접을 받도록 이끌어준 분이다. 아직까지도 인간적인 따뜻함에 변함이 없다. 항상 존경과 감사의 대명사다. 아내의 교통사고 소송을 맡고 있는 한국인 변호사 최원형님과 싱가포르국제학교 한국캠퍼스 김재영 대표님도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토록 사람의 인연이란 너무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맺어지고 이어지는 사람 간의 관계 즉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로지 그 관계를 통해서만이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든가. 누구도 소홀히 하거나 하찮게 여길 수 없는 이유이자 철칙이다.
지금 우리들의 주위에는 누가 있는가?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 있든 한국에 있든 장소와 거리는 상관없다. 항상 좋은 관계로 발전하고 계승해야 한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픈 일에는 서로 보듬어 다독거리고 좋은 일에는 칭찬으로 반겨주는 따뜻한 인정을 꽃피어야 한다. 인간에겐 완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부족하고 모자란다. 서로가 채워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엄연한 진리를 잊거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소원했던 터라면 그 대상이야 누구든 지금 곧 터놓아야 한다. 그래야 사방으로 번지는 웃음보가 터진다.
오늘따라 왜 이토록 내 인연들이 사무치게 그리울까? 또 한 해가 저물어가서인가.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서인가.
이제 겨울 날씨다. 아무래도 올해는 무척 추울 것 같다. 가슴 시리게 멀어져 가는 인연이 그렇고 하루하루 속절없이 차감되는 삶의 시간이 그렇다. 세월이라는 지우개가 아름다운 추억까지도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싱가포르는 따뜻하겠지. 그 후덥지근한 날씨가 좋았던 것을 그 때는 진정 몰랐었다. 추위타는 노인네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이래서 사람의 마음은 용렬하다했겠지.
마냥 세월은 가는 것이고 세월 따라 인생 또한 가는 것인데 어이하여 미워하고 눈 부릅뜨고 살려는고. 서로서로 좋은 모습만 마주하면서 당겨주고 밀어주며 사노라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 말하지 않으련가.
지금 마산에는 ‘가고파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의 첫 머리가 가고파 국화축제여서 집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만사 제치고 달려가 모양 좋은 국화 똬리 몇 컷을 찍어왔다. 하지만 내 가슴을 꽉 채워주지는 못했다. 아직도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지. 내친김에 통영바닷가에 갔다. 바람 불고 파도치고 갈매기 날개 짓은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젊은 연인들의 열기도 뜨겁게 스쳤다. 그런데 나의 바다는 너무도 시리다. 찾으려던 추억은 간 곳 없고 검푸른 파도만 모질게 가슴팍에 부딪쳐들었다. 일출 또한 예전만큼 뜨겁지 않으니 큰 병고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이 사연 쪽지로 띄어 보낼 곳 있어 한바탕 크게 웃고 되돌아섰다.
<23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월이 왜 이리도 빠른지요. 싱가포르를 떠나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군요.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고국의 국화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매회 거르지 않고 성원하여 주시는 간띠분곰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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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파키라님의 댓글
파키라 (sujini71)늘 좋은글 감사해요..엊그제 귀국하신 거 같은데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손녀 딸 정말 자랑스러우시겠어요..가족 모두 건강하시구요..이 아침 서생님의 글로 따뜻해지네요.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안녕하세요? 국화꽃 잘 받았습니다.*^ ^* 손녀가 정말 대견스럽네요. 칭찬 많이 해 주세요.오차드에 나가보면 크리스마스트리장식이 한창입니다.벌써 여섯번째 싱에서의 성탄절입니다.세월이 얼마나 빠른지..저도 분명 한국에 돌아가면 싱이 그리울텐데 지금은 한국이 그리워요.어쩔 수 없나 봅니다.어느곳에 있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게 중요하겠지요.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간띠분곰님의 댓글
간띠분곰 (encarrot)오랜만 입니다 어르신..^^ 항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