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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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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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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12-28

본문

 
  -재래시장과 5일장-
     (길섶에 핀 사랑)

재래시장은 서민들의 젖줄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재래시장만큼 사람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재래시장 들목에는 길섶 시장도 열린다. 노점상 할머니들의 텃밭이다. 농어촌의 5일장에서 도회지의 상시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재래시장은 여전히 질퍽한 인정이 묻어 있어 정겨운 곳이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의 온기가 여명을 열고 어둠을 닫는 삶의 지킴이기도하다. 그래서 신세대 유행 따라 벅신거리는 할인마트보다 구중중한 길섶시장이 좋은 것이다.
할머니들의 상표는 검정 몸뻬다. 사시사철 그 차림이다. 겨울이 닥치면 투박스런 누비옷에 남바위로 뺨을 가린다. 하지만 삭풍은 녹록하지 않다. 동살이 비칠 때까지 물러설 수 없는 추위와의 쌈박질은 오로지 자식사랑 때문이다. 공부하려 또는 직장 찾아 그리고 시집, 장가 가버린 자식이 있어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한 잎 두 닢 모우고 아껴서 자식 등록금도 대야하고 아들딸에게 쌀과 김치도 보내줘야 한다.
때로는 학교 장학금으로도 쾌척해야 사람 사는 도리를 다했다고 여기기도 한다.
재래시장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도로변의 콩나물과 남새바구니와 과일장사 할머니다. 그 가운데서도 시루위에 소복이 내민 노랑 콩나물 대가리는 우리어머니의 상징이다. 심고 김매고 거두고 골루고 시루에 안치는 전 과정이 정성이다. 시루는 언제나 아랫목을 차지했고 담요까지 둘러준다. 손대면 나쁜 균이 들어가 죽는다며 근방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렇게 공들어 키우는 게 정통 콩나물이다. 대형화 기계화 되면서 거리의 할머니 콩나물에 더 군침이 도는 것은 역시 어머니의 사랑이 살아있기에 그렇다.

세밑에 들어서자 그 콩나물국이 먹고 싶었다. 감기에 걸린 탓도 있지만 한 나이 더 먹는다고 생각하니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먹을거리 투정만 부리던 유년 시절, 고난을 부모 탓으로만 돌렸던 학창 시절, 그래서 효도는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불효가 이토록 철저히 심장을 꿰뚫는가.
콜록거리며 재래시장을 찾았다. 시장어귀에는 길거리 장사행렬이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 그 할머니들이다. 시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그야말로 돈 없고 요령부릴 줄도 모르는 그래서 늘 뒤로 밀리는 진국들이다.  
‘고구마 사 가이소’ 고구마와 홍당무, 양파, 피망, 배추 몇 포기가 전부다. 자그마한 광주리마다 소복이 쌓아놓은 할머니의 애잔한 목소리다. 억양이 센 경상도의 사투리가 내 어머니이고 고향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더욱 간절히 듣고 싶었던 사투리가 그새 예사롭게 되어버렸지만 오늘만은 유별나게 가슴을 흔든다. 눈인사를 하면서 ‘나올 때 사드릴게요’라는 약속을 뒤로하고 시장 안에 들어섰다.
웬만한 중소도시의 재래시장은 점포가 잘 정비되어 깔끔하다. 는개에도 질퍽하던 시장 바닥은 환한 돔 덮개로 마냥 포실포실하다. 좋기는 하나 자꾸 낯설기만 한 것은, 예전의 저자거리 살갑던 냄새가 사라진 것일까? 고향을 연상하면 돌담과 초가집이 금방 떠오르듯이 말이다.

시장 한 가운데는 올망졸망한 좌판행렬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다. 바깥보다야 엄청 부자 같이 보이지만 이 곳 또한 할머니들의 삶터다. 이곳저곳 한참 기웃거리고 다니는데 민망스런 일이 벌어졌다. 두 할머니가 심한 아귀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한 할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 단골손님에게 시금치를 팔았다는 항의이고, 손님이 사겠다는데 팔아야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반론이었다. 의리를 따지는 말다툼이서 볼썽사납지는 않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생선이다. 사실 싱가포르에서는 생선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다. 너무 맛있어 보이던 조기를 샀다가 비리기만 하여 입맛을 버렸던 경험이 생선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고기도 낯설고 맛도 분간할 수 없어 고작 새우와 꽃게 갈치만 사먹었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낯익고 맛들인 생선이 수북수북 쌓여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입맛만 땅기면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사방에 널려있는 것이다. 이래서 정든 내 나라 내 고장이 좋은가보다.
나는 걷다말고 풍족한 우리 것들 앞에서 잠깐 상념에 잠겼다. 싱가포르에서 손주들은 현지 음식을 잘 골라 먹었지만 우리 내외는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했다. 역시 입맛이 맞지 않아서다. 아내와 쇼핑을 나갔다가 점심은 끝내 햄버그로 때웠던 때가 엊그제 같다. 벌써 추억으로 사그라지고 있어 못내 서운하다. 이제 다시는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곳이 아련히 다가오다 슬그머니 물러가는 순간이었다.

방한복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고 시장 구석구석을 더 둘려봤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탐색만 했다. 기껏 홍합 한 바구니만 샀다. 그리고 시장 들목의 노상 할머니에게 갔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마땅히 살 것이 없어 바구니마다 담겨있는 고구마에 눈길을 주었더니 눈치 빠른 할머니가 자주색 고구마는 3천원이고 누르스레한 고구마는 5천원이라고 했다. 기왕이면 한 푼이라도 더 팔아주고 싶어 5천 원짜리를 샀다. 그런데 할머니가 한사코 자주색 고구마를 서너 개나 더 넣어준다.
나는 아내와 재래시장에 나가면 절대 값을 깎지 말자고 한다. 콩나물 한두 손, 풋고추 한 두 개 덜 먹으면 할머니들을 기분 좋게 해드리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이 할머니는 이 한 곳에서 장사한지 40년째라고 했다. 마흔 나이에 시작하였다니까 올해 여든이다. 아직 쟁쟁했다. 추위에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더니 힘들어도 집에 있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식 자랑이다. 큰 아들은 공구상회를 크게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아들들이 이제 편이 모시겠다고 해도 내 고집으로 나온다고 한다. 할머니는 행여 자식들이 당신으로 하여 몹쓸 말이라도 얻어먹을까 봐 미리 연막을 치고 있었다. 이것이 여느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다 싶어 더는 묻지 못했다.    

시장 들목의 시내버스 정유소를 지나올 때 할머니들의 보따리에서 또 다른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촌에서 팔려고 가지고 나오는 농산물들이다. 시꺼먼 보따리 속에는 찹쌀도 있고 팥도 있을 것이고 홍시와 모개도 들어 있을법하여 가슴이 찡하다. 돈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1~2만원어치 밖에 더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액면으로야 적은 돈이지만 그 무게만큼은 잘나가는 도회지 중산층의 20만원보다 훨씬 더 무거울 것이다. 사랑이라는 어머니의 도량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금이나 옛날 옛적이나 다를 게 없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영구불변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 어린 적 어머니가 무지개로 피어오른다. 집에서 십 오리 멀찌감치 5일장이 섰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가지도 따고 풋고추도 땄다. 애호박과 오이도 필수다. 이것저것 구색을 맞추면서 연신 내 고무신 값을 계산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많이 이고가야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말이다.
대고리에 넘쳐나는 푸성귀 보따리를 목이 자지러지도록 이고 동구 밖을 나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가 약속한 새 고무신을 기다리며 동생들을 돌보던 코흘리개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제 할아비 되어 그리는 모정이 이토록 사무칠 줄은 미처 몰랐다.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되고 할미 할아비 될 줄은 아득한 먼 이야기로 여겼지만 한 세월 잠깐인 것도 지나고서야 이제 알았다.
        
오촌당숙은 소 장사를 했다. 이 장 저 장마다 소를 몰고 다녔다. 허리에는 전대를 차고 다녔는데 그 때 소 값도 만만찮아 논 한 마지기 값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며 부러워했다. 그 당시 납량괴담은 소장수들의 산적 이야기다. 어스름한 고갯길을 넘어오는데 키가 팔 척에다 시꺼먼 구레나룻수염의 험상궂게 생긴 산 도둑놈이 시퍼런 칼을 들고 나타나 소판 돈을 뺏어 갔다는 게 이야기의 줄거리다. 어머니가 들러주던 산적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웠든지 간이 콩알만큼 오그라들고 부들부들 떨던 그 때가 너무 그립다.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세월이기에 이토록 안타까운 것이다.
1년에 한두 번은 어머니 따라 장날에 가는 일도 있었다. 장이 서는 장터는 주로 면 사무소 소재지의 한적한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옷가지와 신발과 생필품 잡화상들의 자리는 고정되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어머니들의 하루 장사 보따리가 널려졌었다. 그러니까 그 때도 어머니들의 자리는 늘 고달프고 소외되었다. 장날의 분위기는 동동구리무 장사의 배꼽 쥐는 입담과 북소리 그리고 요란스런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한껏 띄었다. 동동구리무의 어원이 재미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자 화장품 크림을 북소리를 동동 울리며 판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때 사정은 동동크림을 하나 사기도 여간 큰마음 먹지 않고는 보고도 못 먹는 떡이었다. 엿판에서 목수의 대패 날로 톡톡 처서 떼어주던 엿 맛은 이제 영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때 묻지 않은 옛사람들의 순수한 인정의 맛이기에 그럴 것이다. 고무신도 꿰매신고 그래도 낡고 구멍 나서 더는 신을 수 없게 되면 다음 차례는 엿 바꿔 먹기였다. 엄마 몰래 보리쌀 퍼주고 붕어빵 바꿔 먹던 추억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 꺼리다.
손주들은 할아비의 추억 따먹기가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자주 들려 달라고 졸라대기도 한다. 자기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그야말로 옛날이야기니까 꽤나 재미있는 모양이다.    
        
재래시장은 야무진 주부들의 알뜰살림 창구이기도하다. 젊은 엄마들은 대형 마트로 가고 재래시장은 중년 부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마트의 상품은 포장과 정찰가다. 이에 반해 재래시장의 상품은 파는 장사나 사는 손님의 마음대로 양도 정하고 값도 매긴다. 장사꾼의 손에 따라 덤도 주고 손님의 투정 따라 값도 깎아준다. 흥정이 있어 훈기가 피어나는 곳이다. 원래 우리가 사는 본래의 모습이다. 투박하고 껄쭉한 농어촌 인심이 삭막한 도시로 전달되는 통로이기도 하여 소중하다. 이를 말하듯 요즘 도회지의 아파트단지에서도 노상 5일장이 열리기도 하지만 예전의 순수성은 없어 아쉽다. 싱가포르에도 공터를 이용한 이동식 장이 서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의 정서와는 다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젯밤 MBC ‘송년특집 굿바이 09’에서 탤런트 조형기씨가 이런 말을 했다. “캐나다로 유학 떠나는 두 아들과 뒷바라지 하려가는 집사람을 전송하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혼자 있게 되니까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버릇이 생기더라.”
감정표현이 무디고 어색해서 들어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아버지(남자)들의 속내가 그대로 표출된 말이었다. 그리고 뼈저리도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자기와의 대화에서 견뎌내려는 몸부림이 엿보여 가슴 저몄다. 이것은 어느 특정인의 상황이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기러기 가족들의 이야기어서 그랬다.  
오늘 내가 ‘재래시장과 5일장’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정신을 통해서 부모의 내면을 재음미하고 나아가 지금의 엄마 아빠들이 겪고 있는 자식 사랑을 아이들에게 분명히 전하기를 바라서다. 어떤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부모자식간의 끈끈한 사랑과 가족의 공동체의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다함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6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1주일 동안 감기몸살로 누었다가 어제부터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그토록 염려하여 주셨는데도 보람 없이 말입니다. 환절기에 감기를 잘하는 나에게는 고온다습한 상하의 나라가 아주 제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팬들과 함께 싱가포르도 그리워집니다.  
2010년 새해를 맞아 여러분들의 댁내에 만복이 충만하시고 소원성취하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언제나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시는 luna 님, 훌랄라 님, chris 님, 캔디 님, 민아 님, 구름처럼 님, 날아라싱가폴 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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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레몬트리님의 댓글

레몬트리 (bead73)

이제 몸은 괜찮아 지셨나요? 선생님 글을 대하니 한국에 계신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chris님의 댓글

chris (mckhang)

건강하셨으면 했는데 감기에 걸리셨네요..그래도 쾌차하셔서 이렇게 글을 올려 주시니 감사합니다...초등학교 시절 그때 당시 엄마들을 생각하면 참 나이가 많은 아줌마들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벌써 제가 그 때 입니다..선생님 말씀처럼 세월이 정말 빠른것 같아요...어제께 아프신 친정엄마의 전화에 참 많이 맘이 아팠는데 당신 몸이 아프심에도 마지막 말씀은 넘 애쓰며 살지 말라고 세월 아주 잠깐이니 제 몸도 챙기라 몇 번이고 당부하시는 말씀에 참 많이 울었습니다...문득 선생님 글을 읽다 보니 어릴적 새끼손가락 걸며 엄마 옆에서 오래 오래 살꺼라 약속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새해에는 환절기에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구요 항상 건강하세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건강은 좀 좋아 지셨어요?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인데,,,,,,한국가셔서 바쁘실텐데도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

Tony님의 댓글

Tony (jaehojoung)

필명을 남강으로 바꾸셔서 못 알아 ”œ습니다. 다가오는 2010에는 가내 좋은 일 만 생기시길 기원 합니다. 저도 진급도 하고 해야 되는 데... 갈 길이 까마득 한 듯 합니다.^^

강원도님의 댓글

강원도 (allinpyw)

살아계실때는,,읽고,울고,다시읽고,또우는불효자식,,건강,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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