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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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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시작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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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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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1
    4. 2009-11-23

본문

영하의_날씨에도_생명력을_잃지_않는_들국화_그리고_겨울의_여심_동백꽃.JPG

갈매기들의_먹이_다툼이_장관이다.JPG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한다.
너와 나의 관계를 통해서 자연스레 교감하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하지만 세상사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건강한 행복만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더 많게 마련이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어 하나같이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로지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보고 느끼는 현장에서,
인생과 행복을 함께 더듬고 설음과 불행의 고통까지도 나누면서 보듬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나의 이야기는 이미 싱가포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가 그 출발점이다. 노년 들어 가장 많은 시련과 변화와 도전이 시작된 곳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나에게 있어 추억의 보고(寶庫)이자 삶의 토양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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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향(菊香)의 추억-

며칠 전의 일이다. 손자를 중국어학원에서 데려오던 길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버스 안에서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랑 국화축제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마주 보이는 곳에 ‘돝섬’이 있다. 그 곳에 ‘가고파 국화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산은 예로부터 시향(詩鄕)의 고장으로 불리어져 왔다. 그 유명한 ‘가고파’의 작사자 이은상 시인의 고향이다. 그래서 이름 하여 ‘가고파 국화축제’로 명명된 것 같다.
말만 들어도 국향이 코를 찌르는 듯 했다.
손자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었다. 토요일에 꼭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더욱 가고 싶은 이유는 며느리가 엊그제 선물한 ‘DSLR 1420만화소’짜리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내심 기다리던 토요일이다. 얼른 집안 청소부터 했다. 나설 채비를 하면서 손자와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아내는 찬 바닷바람이 싫다고 했고 손자는 벌써 보았다고 했다. 나 홀로였다. 좀 서운했지만 가야만 했다. 겨울이면 즐겨 입는 파카와 청바지를 꺼냈다. 마스크에 가죽장갑까지 끼니까 눈만 빠금히 나왔다. 옷이 한 짐이다. 야위어서 뚱뚱하지는 않았으나 영 불편하다.  
선착장까지 2킬로미터 정도여서 운동 삼아 걸었다. 매일 하는 걷기 운동을 오늘은 빼어먹었기에 잘 된 일이기도 했다.
원래 해안도로는 후미진 곳이어서 사람 왕래가 적기는 했지만 오늘따라 더욱 한산하다. 타박타박 걸어 가다보니 제법 귀가 시리다.
그래도 어깨에 둘러맨 카메라장비 가방의 무게로 그까짓 초동의 추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연안여객선 터미널의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요즘 세상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짓 말 좀 보태서 한 발만 나가도 승용차를 이용하는 요즘 사람들이다. 자동차로 도로가 몸살을 앓고 주차난으로 전쟁이기는 시골도 마찬가지다. 편의 일변도의 의식이 늘 걱정이다.
터미널에 들어서자 이게 웬 말인가? 매표소 앞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전국 각지의 관광객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2009년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가 기상 악화로 11. 15일자로 종료 되었습니다.”
허탕을 친 것이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망설이다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출품된 크고 멋진 국화는 없더라도 그 조각이라도 있을 것이고 그도 저도 없으면 바다 풍경이라도 담아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7000원을 주고 표를 샀다. 20분을 가다려야 했다.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어 휴대폰을 꺼내 들었으나 전화번호 메모지가 없다. ‘한국촌’ 생활기에 자주 글을 올리다가 귀국한 ‘해녀’의 휴대폰 번호가 떠올랐다. 나처럼 외우기 싫어하고 기억력도 떨어진 사람이지만 번호가 너무 외우기 쉬웠기에 금방 살려냈다.

신호음이 그치고 내가 ‘예보시오’라고 하자마자 곧 바로 알아보는 눈치가 예사롭지 않아 놀랍다. 처음 건너는 목소린데 말이다. 금방 알아봐줘서 더욱 고맙고 반가웠다.
상큼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편했다.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사진속의 상냥스런 얼굴 그대로다. 엊그제 서울에 다녀온 ‘해녀’이야기를 말머리로 저쪽은 통영 이야기, 나는 돝섬가는 이야기로 한참 통화했다. 월말께 서울 다녀와서 통영에 가겠다는 나의 일정을 끝으로 휴대폰을 닫았다.  
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자 싱가포르 팬들이 생각났다. 만나 보았던 분들은 또 보고 싶고 매회 마다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들, 댓글과 쪽지로 격려하여 주신 모든 분들이 영상으로 스쳐갔다.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 충동의 폭풍이 또 한 차례 거세게 휘몰아쳤다.

여객선의 후미에 갈매기 떼가 몰려왔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서다. 생존의 경쟁은 어디에서나 치열했다.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멋진 카메라의 셔터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연속촬영 셔터소리가 더 중후하게 들렸다. 처녀 촬영 대상이 갈매기가 된 것이다. 보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검푸른 겨울 바다 그리고 그 위를 우아한 날갯짓으로 맴도는 갈매기는 그야말로 한 포기 수채화다.
센토사보다 조금 먼 거리라서 금방 도착했다. 들어가는 손님 나가는 손님은 어림잡아 공히 60여명 쯤 되어보였다. 내가 쓴 시구 한 줄이 문뜩 생각났다. “...오가는 것이 세상사거늘 어찌 가는 세월만 탓하는가?”
몇 년 전에 와보았지만 그 때 모습은 생각나지 않고 낯설었다. 부둣가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의 인물화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연상시켰다. 내가 파리에 갔던 그 해도 겨울이었다. 두터운 외투를 걸친 거리의 화가들이 제마다 관광객들의 얼굴을 화판에 옮겨 담느라 분주했었다. 20세기의 대표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몽마르트를 무대로 성장했다고 한다. 돝섬 해변의 거리화가들 가운데서 한국의 피카소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꼭 나올 것이다.

양해를 구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딱 한 장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부터 국화를 찾아야 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나의 팬들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 그윽한 국화향기를 맡아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얀, 노랑, 연분홍, 보라색 등등...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없다. 이미 한줌의 흙이 되어 사라져 간 것이다. “몸은 가더라도 정(향기)만은 남겨두지.” 유행가 구절이 간절한 순간이다.  
한참을 헤매다 시들어 가고 있는 들국화 군락을 찾았다. 향기야 턱도 없지만 겨울의 열정 인 동백꽃과 조화로워 괜찮았다. 이것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금방 배가 부르다.

20대 초반의 아가씨 둘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둘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할 텐데...! 찍어주겠다고 자청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싱가포르 강’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내와 래플스의 강둑을 거닐다가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내만 찍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든지 지나가던 낯선 서양 부인이 다가와 함께 서라고 했다. 친절하던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웠다. 사진 찍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아 참 잘 나왔다.
그런 저런 생각에 파묻히며 섬의 정상에 올랐다. 하얀 기념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아가씨들이 중국말을 했다. 깜짝 놀랐다. 여기에서 중국 아가씨들을 보다니? 싱가포르에서는 멀리만 느껴졌던 중국 사람들을 내 고장에서 맞닥뜨리자 반가웠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는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돈이 부족할 때 외상도 마다하지 않았던 과일가게 중국 아가씨가 그립다. 시원찮은 영어로 말을 걸고 친근감이라도 보여주고 싶었으나 오해 받을까봐 포기했다.    

작은 섬의 낮은 산이기는 해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한 바퀴를 돌아 나오니 뱃속이 출출했다. 마침 ‘고구마 구워먹기 체험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봉지 3,000원이다. 덤으로 작은 군밤도 몇 개씩 주었고 커피도 주었다. 군고구마 한 개를 금방 해치우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시장기를 알아채기라도 하듯 어찌 이처럼 딱 맞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싶다.
국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맡으면서 페리에 몸을 실었다.  

                                                                                             <2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서두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앞으로 저의 이야기는 나와 이웃의 삶을 반추하는  우리들의 고향 모습들을 담아 드리고자 합니다. 바쁜 일과 때문에 자주 올리지는 못하지만  끈은 놓지 않겠습니다. 여느 때 못지않은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민아님의 댓글

민아 (taelin3001)

와~~~국화축제 다녀오셨네요..이제 슬슬 한국에 적응이 되어 가시나 봅니다  화질이 아주 좋아보여요.선생님~~^^*마산의 푸르른 바다가 눈앞에 있는듯보이구요~~ 그래도 겨울이니 건강 조심하시길.........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한국의 바다,, 갈매기,,, 그리고 국화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리움이 울고 말았습니다.....  한국 가셔도  이곳을 잊지 않고 좋은글 과 사진 올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매일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말씀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합니다.며칠전 페어프라이스에서 한국밤을 사서 쪄먹었습니다.  너무 맛있더군요. 한국 홍시도 그립고... 그곳에 있을땐 잘 먹지도 않던 것들인데 우습지요? 암튼 가고 싶네요.건강하세요.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

남편을 어젯밤 한국으로 출국시키고, 허전한 마음 어찌할 줄 몰라 하루종일 집안에만 콕 박혀있다가 서생님 글을 읽게됐습니다. 오늘 같은날..... 정말이지 눈물이 나도록 한국에 저도 가고 싶네요. 그 향기가 더욱더 진하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구요!

chris님의 댓글

chris (mckhang)

추운 겨울바다가 싫어 남편이 데려간다해도 이리 저리 핑계만 대던 저인데 오늘따라 간절히도 그 바닷바람을 느끼고 싶네요^^ 고국의 좋은 모습 좋은 향기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세요^^

솜사탕컵켘님의 댓글

솜사탕컵켘 (onlyheri)

오랜만에 들어 왔더니 서생님은 이미 한국으로 들어가신 지 오래이고 이미 귀국후의 생활에 적응도 마치신 상태이시네요. 건강하신 거 같아 좋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사진이었었는데 이제 며느님께 받은 새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더 좋아 보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드디어^^님의 댓글

드디어^^ (hyangin321)

저희 집도 마산인데, 고향에 계실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나네요 : ) 베란다로 나가면 마산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집이 유난히 그리워지네요^^

초보 싱가폴리언님의 댓글

초보 싱가폴리언 (stanley3)

싱가폴 생활기에 들어와본적이 없어 서생님 글을 이제서야 읽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 싱가폴리언님의 댓글

초보 싱가폴리언 (stanley3)

싱가폴에 계실때 이글을 읽었으면 차라두 한잔마시며 이것저것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이씨님의 댓글

이씨 (olevis501o)

저도 고향이 마산인데... 매번 고향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2월에는 꼭 마산 저도 가렵니다.

사랑님의 댓글

사랑 (piangca0213)

항상 기대되요. 어떤 글이 나를 또 매료시키실지?  저는 전에 뚱땡이라는 아이디로 올렸었어요. 어르신의 귀국굴까지 빠짐없이 읽었었지요. 이젠 영상까지 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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