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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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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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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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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인가족 한마당”에 다녀와서(참관기)-
      
  한인회 사이트에서 반가운 소식을 보았다.
“2009 한인가족 한마당”행사가 떴다.
행사 내용을 쭉 살펴봤다.
백일장/사생대회/디카 촬영대회/제3회 대사배 바둑대회/가족노래자랑(아빠 동요 부르기 대회)/마술사 공연(마술/풍선 만들기/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했다.
우선 머리에 들어오는 참가 파트는 백일장과 디카 촬영대회다. 한 번 참가하고 싶었다.
문제는 손자다. 어른들과 어울리는 모임에는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체면치례가 지나치게 심하고 쑥스럽다 싶은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성격 때문이다.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고 할아비와 손자의 대화시간이 됐다. 그 날 겪었던 하루의 이야기다. 일과라 하여봤자 개미 쳇바퀴 도는 그 일이 그 일이고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즐겁고 소중했다.
포트 캔닝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땠다. 의도된 술수였다.
기껏해야 고대 말레이시아 통치자가 소유했던 언덕위의 궁전이다. 지금은 숲속의 산책로와 조깅 코스가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이것이 전부였다. 손자는 신기하다는 듯 귀를 기우렸다.

하루에도 십 수 번씩 부르는 애칭이 튀어 나왔다.
  “똥가아지야, 지금 내가 이야기 한 공원에 가볼 생각은 없니?”
손자는 머뭇거렸다.
“그 곳에서 한인회에서 마련한 축제도 있다는데...”
“그런데요?”
“사생대회도 있데...”
뜻밖의 반응이 일어났다.
“초등학생도 참가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그런데 한 번 해보려고?”  
“예”
손자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머뭇거리더니
“1등하면 상도 줘요?”
“대회니까 당연히 상이 있지.”
“그럼 한 번 해 봐야지.”
나는 손자에게 상보다는 참가한다는데 더 큰 뜻이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수상하지 못 했을 때에 대비해서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야 했다.
손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상은 받지 못해도 괜찮겠다는 거지요.”
참가하겠다는 말은 뱉었지만 상을 두고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사실 사생화는 처음이다.

이 날 손자와의 대화는 너무 좋았다. 좋을 정도가 아니라 감격스러웠다.
내 손자에게도 저런 면모가 있구나 싶어서다.
나는 늘 손자들에게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라고 주문하던 터라 그 기쁨은 컸다.
‘평소에 내 말을 잘 새겨들었구나.’ 하는 만족감과 ‘많이 성숙하였다’는 느낌이 상승작용을 했다.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대회 하루 앞 날 대회장을 사전 답사하기로 한 것이다.

한인회에 전화했다. 대회장인 “포트캐닝 공원(Fort Canning Park)”의 위치와 차편을 물었다. 도비곳(dhoby ghaut) 엠알티를 이용하면 가장 가깝다고 했다.
우리는 시티홀에서 빨강라인으로 갈아탔다. 한 정거장 만에 도착한 도비곳에서 내려 “파크몰”에 갔다. 아무리 찾아봐도 포토캐닝으로 나가는 길은 없었다. 알고 보니 4층 주차장에서 나가야 했다. 편리하기는 했지만 주차장을 가로질려나가야 하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옳은 길은 아니다.

길 건너 저편 숲속에 묵직한 안내판 “Fort Canning Park”가 기다리듯 서 있다. 옮게 찾은 것 같았다.
주차장 위에 계단이 있고 사자상이 양쪽에 버텨있다. 상단에 있는 대문 한 가운데 박혀있는 사자 입에서는 연신 물을 품어내고 있었다.
하얀 건물(The Legends Fort Canning Park)이 있었다. 이것이 예전의 궁전이 아니었나 싶지만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역사성이 풍기는 곳임엔 틀림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회를 치르기에는 마땅찮은 곳이었다. 더 둘러보자고 했으나 손자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시간도 모자라 내일 부딪쳐 보기로 하고 돌아 섰다.

손자는 물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크 몰에는 문구점이 없었다. 반대편에 있는 케피탈 시티 몰에 갔다. 싱가포르의 몰이 대체적으로 그렇듯 규모가 컸다. 손자가 원하는 물감을 샀다. 오늘 저녁은 외식을 하자고 배를 맞췄다.
손자는 어느새 보았던지 6층에 3,000가지가 넘는 각국의 음식이 있다며 그 곳에 가자고 했다. 들어서자 오른쪽 첫 자리에 한국 코너가 있어 기분이 좋았다.
기대했던 교민은 없었다. 여자 둘과 젊은이는 현지 사람 같았다. 주 메뉴가 비빔밥과 라면 그리고 고등어 구이었다. 씁쓸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교포식당이다 싶어 고등어구이를 시켰다.
손자는 중국 음식을 먹겠다고 했다. 전기구이 판에서 구어 낸 고등어 맛은 보기보다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인가족 한마당에 참가할 준비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9시 개막 시간에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도비곳에 도착했을 때 9시가 조금 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파크 몰에서 대회에 참가하는 엄마를 만나 대회장소를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포트캐닝센터에 다다랐을 때는 대회장의 안내 스피커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9시20분이었다. 대형 천막 아래의 접수처에서는 안내 도우미들이 참가 신청서를 나누어 주며 선물도 주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이미 개회식은 끝난 것 같았다. 땀 흘린 보람이 없었다.  
손자는 사생대회 신청서를 내고 도화지를 받았다. 나는 디카 촬영대회 신청서를 냈다. 선물 봉투 두 개를 받았다.

그제야 사방을 둘러봤다. 엄마와 아이들이 많이 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고국의 냄새다. 어른 아이 모두 예쁘고 세련미가 넘쳤다. 한민족의 자존과 긍지다.
이미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외진 곳에 있는 의자 하나를 차지했다. 손자는 현장에 부딪치자 차라리 차분해 졌다. 푸른 잔디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선 아름드리 열대림과 나무 사이사이로 삐죽 삐죽 내민 빌딩을 화폭에 담기로 했다. 공원의자를 화가(easel)로 삼기에는 부자연스럽고 불편했다. 자리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손자가 자리를 잡고 화구를 꺼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기기묘묘한 열대림은 여느 공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 희귀성이 떨어지고 찍는 각도나 명암의 기법을 발휘하기에도 빛과 장소가 마땅찮았다. 무엇보다 독벌레에 약한 손자 때문에 마냥 내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다.
손쉬운 대상으로 어제 보았던 꽃이 떠올랐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염려했던 대로 아름다운의 절정이 마-악 지나고 있었다.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큰 이름 모를 연붉은 꽃이다.
시들기 시작한 꽃잎의 가장자리 군데군데에 벌레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런 것은 꽃을 받치고 있는 배경이 괜찮았다. 풋풋한 나뭇잎에 쏘옥 안긴 자잘한 꽃과 보랏빛 꽃잎의 군락이 그 정도의 흠은 카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문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머릿속에는 온통 모기와 개미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를 손자 밖에 없었다.

얼른 몇 컷 찍고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손자는 그림을 그리다말고 나를 찾아 한참거리를 나서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긁고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종아리부터 살펴보았다. 벌써 대 여섯 군데가 콩알만큼씩 부어올라 있었다. 너무 속이 상했다. 번한 일을 두고도 자리를 뜬데 대해 후회했다. 그래도 마무리를 하겠다고 하여 곁에 앉아 벌레를 쫒았다.
가방을 챙겨 자리를 뜰 때는 더 많은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행여 알아보는 분이 있을까 싶어 창이 큰 모자를 더욱 꾹 눌려 썼다.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천막 속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마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페이스 페인팅이 한창이었다. 딱히 어른 모임이 아닌 이상 모임 그 자체가 어린이 중심이다.  
한인회 재킷을 입은 봉사자들의 발걸음은 쉴 새 없이 바빴다. 사무국장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 해 경노잔치에서 처음 알게 된 이후 세 번째 만난 사이다. 반갑고 미안스러웠다. 도움만 받고 체면치례 한 번 변변히 못했다. 근황만 묻는 시간도 아껴야 할 만큼 분주했다.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는 실내에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땀을 쫒아냈다. 손자도 시원스런  옥내에 들어서자 찌그려졌던 인상이 펴졌다. 1차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머리를 맞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사람 사는 훈기를 뿜어냈다.    
손자를 잠깐 앉혀두고 캠코더를 들고 나섰다. 입장할 때 잠깐 찍다가 멈췄던 아쉬움을 그냥 그대로 묻고 갈 수가 없었다.  

바둑대회장을 찾았던 봉세종 한인회장과 김중근 주 싱가포르 대사의 친선 바둑이 깜짝 등장했다. 바둑판 주변을 에어 싸고 지켜보던 교민들은 하나같이 환호 했다. 대한민국 교민은 너와 내가 따로 없었다. 민과 관의 한계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고 가는 대한의 사람, 오로지 그것일 뿐이었다.  
이 날 두 분의 바둑은 교민들의 끈끈한 정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손자와 함께 일찌감치 탕수육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떡을 얻어먹었다. 싱가포르에서 먹는 떡 맛을 두고 꿀맛이라고 하였겠다.
가장 바쁜 사람은 김무성 사무국장이다. 대회 진행을 총괄하고 대내외 인사들을 챙겨야 하니까 꼼짝달싹 못할 게 뻔했다.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선 여성회 임원들과 봉사자들의 땀은 값졌다. 이런 일꾼들이 있어 한인사회의 미래는 더욱 밝다.  

오후 1시께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늘 잔치 마당을 망치지나 아닐까 염려 했으나 30여분 만에 말끔히 개었다. 하늘도 물대포로 축하하는 축제였다.
2라운드 바둑이 시작되었다. 젊은 엄마가 다가왔다. 인사를 받고서야 어렴풋이 기억을 해냈다. 불과 여섯 달 전에 집 때문에 두 번이나 만난 사이인데 그토록 기억을 못했다.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던가. 너무 반갑고 미안했다. 아들이 바둑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기꺼이 동의하여 고마웠다.
바깥에 나서자 ‘한국촌’의 스타 ‘베독 밥집 아저씨’도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교민들의 얼굴에는 사랑과 즐거움이 가득 찼다. 이렇듯 많은 교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소중한 공간이다.
한국학교 2학년 어린이들의 ‘아~대한민국“은 절정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린이들의 춤은  씩씩했다. 무엇보다 지도하신 여선생님의 열정적인 몸짓은 교민들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곧 이어진 노래자랑은 파란 눈 아빠의 ‘곰 세 마리’로 막이 올랐다. 아빠의 넉넉한 몸짓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나는 손자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서 돌아서야 했다. 이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싱가포르 서울 간의 항공권 추첨도 반납했다. 무엇보다 폐회식을 참관하지 못하고 돌아 온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2009 한인가족 한마당“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같이 좋은 날 더 많은 교민들이 함께 즐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8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이 글은 참가 직후 써 두었던 글입니다. 오늘 ‘생활기’란의 불이 꺼져 있는데다 36회에 들렸다 가신 분들이 많아 이 글을 올립니다. 특히 광복절인 오늘 한국학교에서   는 기념식 겸 ‘한인가족 한마당’ 행사에서 있었던 각종 대회의 시상식도 있답니다.
영광스럽게도 저가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의 덕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

^^ 축하드립니다. 저도 잘 찍지는 못하지만... 제 손에도 늘 카메라가 있는데.... ^^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을 찍는게 너무 좋습니다.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

서생님의 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저도 로사리아님 처럼 늘 카메라를 두고 살지만 요리만 찍어서요 ㅎㅎ 오늘이 수상식이군요, 비록 마음만으로 보내는 꽃다발, 마음으로 받으시기를~~

태린님의 댓글

태린 (taelin3001)

대상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한인회 기념행사의 자세한 설명을 읽으며 그 곳에 함께 있었던 착각을 느껴봅니다.언제나 올려주시는글 잘 읽고 있습니다.건강하십시요^^*

피닉스님의 댓글

피닉스 (wisethink)

^^ 오옷.... 우리 소중한 멤버들의 댓글이^^  무엇보다도 대상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또 뵈어요^^  늘 강경하시길^^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대상 축하드려요. 글만 읽었는데  제가 마치 한인회 행사를 다녀온듯하네요.  기억하실지모르지만,,, 서생님글 읽으면서 친정 아버지 생각 난다고했던  아이 엄마입니다. 계속 서생님 글 읽으면서 조용히 있었는데  대상 수상하셨다는  소식에  몇자 올리고 갑니다.

k님의 댓글

k (shajh5223)

대상수상 축하드려요^^

케빈님의 댓글

케빈 (yeskimc)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믓흐~

새 보금자리님의 댓글

새 보금자리 (dkemftpt)

서생님 요즘바뻐서 글을못읽엇더니 할머님이오셧네요 오늘옆에계시던분인가봐요 인사를제대로 못드린듯하여 아쉬운맘잇네요  다음뻔에기회가되면 제가 꼭 두분 차한잔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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