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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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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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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11
본문
내 아내가 싱가포르에 돌아온 것은 떠 난지 여덟 달만이다.
손자의 여름방학이 끝나는 6월말이었다.
로칼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된 5월28일 아내와 얼굴을 마주한지 한 달째기도 하다. 왜 날짜에 무게를 두느냐면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얼마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요인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통사고 이후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아내는 예전의 얼굴도 자세도 아니었다. 다 늙은 절룩발이 할머니였다. 삶에 지쳐버린 듯 초라한 모습 앞에서 주저앉을 번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울음마저 비켜갔다. 가족들의 분위기에 며칠이 흘러갔다.
나는 어떻든지 시린 아내의 상처를 보듬어내야 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차디찬 가슴에 무엇을 안겨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래 나는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막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는 당신이 떠난 이후 잠을 설치며 무사안녕을 빌었어, 그런데 당신은 애간장을 태우며 철부지 손자랑 외로움에 지쳐있을 나를 생각이나 했을까?”
참으로 어이없고 얼토당토 않는 어설픈 발설이다. 아내는 갑작스런 나의 돌발언동에 멍하니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망발이냐는 눈치다. 이미 말은 뱉었고 수습할 길은 막연했다.
“미안해, 당신 없는 일곱 달은 너무 힘들었어! 당신 걱정하느라 애타며 지샌 밤이 얼마인지 알기나 하겠는가 싶어 울꺽 내뱉은 실언이야.”
이 말을 듣던 아내의 눈가엔 이슬이 맺어왔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아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함께 얼마를 울었다. 허무하게 흘려가 버린 세월과 허전하게만 느껴지는 늙은이의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 되었다. 나이가 더할수록 왜 이토록 눈물이 많아지는지 주책이 없다.
아내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한 달 전에 끊고 있었다.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 때문에 혈관 특수촬영까지 받는 소동이 벌어졌었다고 했다. 진단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수술까지는 피했지만 혈관이 좁아진 상태니까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아파트 헬스장의 운동시설과 별반 차이도 없고 남녀 환자들과 어울리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교통사고에서 시작하여 담낭수술, 그리고 혈관 질환의 진단에 이르니까 산다는데 대한 회의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무기력한 사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깊은 시름에 잠겼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머릿속은 더욱 꼬이고 흐트러졌다. 이틀 동안 내 자신과의 머리싸움에서 얻은 결론은 우선 아내의 정신적 안정이라는데 무게를 두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되찾게 하자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바깥출입도 싫어하는 아내를 달래서 인근 백화점부터 갔다. 짙은 향수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느 백화점 할 것 없이 입구 매장은 화장품 코너다. 우선 아내에게 화장품을 사도록 권했다. 반응은 예상대로다. “이 꼬락서니에 무슨 화장이냐.”는 짜증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화풀이다. 나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네, 그렇기는 한데 여자와 화장은 어떤 처지와는 상관이 없거든, 필수니까.” 작심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점원들은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아내 곁에 달아 붙었다. 남정네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갖가지 화장품을 꺼내 열심히 설명한다. 손등에 발라주며 얼굴에 맞는 색깔을 유도한다. 마음 약한 아내는 끝내 넘어갔다. 기초화장품을 모두 샀다. 다리가 아프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오늘은 이만하기로 했다. 백화점에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내는 예전의 자아를 찾아 서서히 녹아나기 시작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져 갔다. 남은 것은 운동이었다. 아내는 심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핑계 삼아 잘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해야 한다니까 다리가 당기고 아파서 하기 싫다고 했다. 영락없는 어린애다.
서 너 달만 이빨 악물고 운동에 집중하자고 하였지만 영 먹히지 않는다. 어쩔 수없이 집안에서 걷기 연습을 하는 것으로 낙찰되었다. 다친 다리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방어의식에서 탈피해야 했다. 물론 아프니까 쉬운 일은 아니겠다. 하지만 해야 한다. 다친 왼쪽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데 빨리 떼버리니까 절룩거릴 수밖에 없다. 구령을 했다. “왼쪽 다리에 힘주고, 오른쪽 다리는 천천히 떼고.”의 반복이다. 뒤로 걷기도 했다. 그런데 10분도 못한다. 걷기 연습을 유도하기 위해 인근 이마트에도 자주 나갔다. 카트를 밀고 다니면 걸음걸이가 훨씬 자연스러워 좋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아내를 한국에 있게 해야 할지, 싱가포르에 함께 가야할지 결정을 봐야 한다. 어떤 것이 아내를 위하는 길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지난 사고 이후 잦은 병치레가 마음에 걸려서다. 처음 싱가포르에 갈 때 당당하던 나의 자신감도 무너진 터다. 일흔이라는 나이를 이토록 실감한 적은 없다. 작년만 해도 처음 하게 되는 외국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언어의 장벽마저도 뛰어넘으려 했었다. 어쩌면 부질없는 만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에 힘없이 주저앉을 수도 없다. 많은 고뇌와 시름 끝에 내린 결론은 아내를 내 곁에 두어야 한다는데 마침표를 찍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부부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첫째 이유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보듬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가정환경이다. 살림은 아껴 살아야 한다는 아내의 평소 지론은 가정부는커녕 시간제 청소부도 사양해 왔다. 그런 그가 집안일에 손 놓고 있을 리 만무다. 알게 모르게 무리할 것이 확연한데 집에 있도록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세 번째는 수술을 받았던 싱가포르병원에 검진을 받아보고 싶었다. 정녕 장애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 혹여 어떤 방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무척 알고 싶어서다. 또 하나는 교통사고 가해자가 사실 시인을 하지 않을 경우 피해 당사자가 법정증언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는데 있었다.
아내도 어떻게 할지 고민하였을 것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것은 출국 보름 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나랑 함께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한동안 대꾸가 없다. “또?”라는 말이 나오지나 않을지 초조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시간이 10여분이나 흘러갔다.
마침내 아내가 입을 떼었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희생했는데 아직도 남았는가?”라는 자탄의 목소리다.
차분하고 잔잔하였지만 내 가슴에 다가오는 울림은 아프기만 했다. 끝도 갓도 없는 자식들의 끊임없는 무언의 압력과 또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외마디로 함축되어 나온 울부짖음이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나면 해방되는 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던 아내였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끄덕거리는 고갯짓으로 동의하는 방법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곧 바로 평상심을 되찾았다. 가겠다는 것이다. 가슴에 바위가 얹혀있 듯 답답했던 마음이 확 풀렸다.
출국 짐은 마른 반찬 위주로 꾸렸다. 가장 골칫거리였던 김치는 며칠분만 가져가기로 했다. 아내가 담아먹기로 한 것이다. 김치 걱정을 면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간의 나의 노력은 아내의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아픔 기억만이 되살아날 그 곳을 향해 묵묵히 자기 짐을 챙기는 모습은 왠지 쓸쓸했다. 그럼에도 애써 밝은 얼굴에 맑은 미소를 머금는 아내의 배려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싱가포르에 오던 날이었다, 떠나는 차량 곁에 서 있던 며느리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절룩거리는 시어머니를 부축하여 승용차에 앉혔다. 시원찮은 몸으로 먼 길을 떠나는 시어머니가 애처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들이 항공권을 사고 짐을 부치는 사이 아내와 손자는 정겹게 담소하며 때때로 킥킥거렸다. 마음이 놓였다.
저 웃음이 참일까?
아빠 엄마 곁을 떠나는 어린 녀석, 그리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을 그 곳을 다시 찾아가야하는 한 여인의 진짜 마음은 어떨까? 희비의 대척점에서 남모를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출발 당일 비즈니스석이 단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했던 꿈은 사라졌다. 아내가 좁은 일반석에서 6시간을 버텨내기는 무리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안전띠를 매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모든 것을 운에 맡겼다. 여태까지의 모든 근심걱정을 비행기의 굉음에 묻혀버리는고 싶었다.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50분이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출국수속을 밟았다. 먼저 4층 식당가에 찾아들었다. 손자는 배고프면 못 참는다. 우리 내외는 냉면을 시켰다. 손자는 스시를 시켰는데 밥값이 만만찮다. 두 그릇 값보다 자기 한 그릇 값이 더 많으니까 좀 쑥스럽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서 또 웃음이 나왔다.
다음 코스는 화장품 코너다. 션크림을 샀다. 더는 갈 곳도, 갈수도 없었다. 아내의 거동이 시원찮아서다. 손자가 아빠한테 전화해준 것으로 출국채비는 마무리 되었다.
검표 입구에서 놀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느렸다. 기지개를 켜고 한숨을 쉬고 두리번거리며 배회했다. 한참 몸살을 앓고 나서야 탑승할 수 있었다. 이제 체공 6시간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렸다. 아내의 얼굴에 신경이 집중됐다. 안색이 달라지면 큰일이다. 그런데 다행스럽다. 손자를 끌어안을 만큼 여유로웠다. 물론 힘이 남아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인 것이다.
아내는 이렇게 다시 싱가포르의 땅을 밟았다. 아마 남다른 감회에 넋을 빼앗겼을지 모른다.
집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했다. 손자도 귀국 이전의 모습으로 금방 되돌아 왔다.
이제 싱가포르 생활은 또 다른 모습으로 시작된 것이다. 나는 너무 좋다. 아내 건강을 직접 챙길 수 있어 좋고 나를 거들어 줄 사람이 있어 좋았다.
손자가 등교하던 날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손자는 아내를 부축하고 나는 손자의 책가방을 끌었다. 뒤따르는 나는 즐겁다. 비록 아내의 걸음걸이가 정상이 아니더라도 함께 거닐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부를 얻은 기분이다.
40계단 육교 아래에서 아내와 손자는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육교를 오르내리기에는 무리였다. 나는 얼른 손자를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고 아내 곁에 갔다. 그동안 벼르던 운동을 아내에게 지도하는 일이다. 몸통 좌우 흔들기부터 시작했다. 요령 있게 잘 해 냈다. 그러나 다리 앞뒤로 휘졌기는 힘 드는것 같다. 다섯 코스를 도니까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됐어!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야!”
모두 8개의 운동기구를 다 이용했다. 잔등에 땀이 옷을 뚫고 나왔다. 얼굴은 불그스레 상기되어 있었다.
샤워실에서 나온 그녀는 내 아내였다. 열심히 운동을 마친 아내는 천사였다. 누가 팔불출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좋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어떠한 낯간지러운 수사도 아낌없이 구사하고 싶다.
‘아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는 귀하다.
그녀가 있어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있어 그녀의 힘이 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쌀 씻어 앉혀놓았던 밥을 퍼놓고 “여보 그래도 영감이 좋지?”라고 농을 걸었다. 씨 익 웃는 것으로 보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내 앞에서 밥 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것은 나의 활력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한다.
함께 시장에 나가고 김치도 담그고 반찬도 한다. 아내의 손맛은 그저 그만이다. 손자도 나도 살 찔 것 같다.
인생이란 어차피 왔다가 가는 것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을
미워하지도 말자 괴로워하지도 말자
그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얻어지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자
더 많이 거두고자 한다면 더 많이 베풀고
보다 큰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 만큼 큰 것을 내놔라
이것이 내가 사는 의미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37회에서 계속>
댓글목록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아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는 귀하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짓게 만드는 한마디 같아요.... 난 과연 내 남편에게 어떤 아내일지.... 그냥 매일 열심히 살 뿐입니다.
맛깔님의 댓글
맛깔 (karchizorim)제 선친께서도 엄청 어머니를 아기처럼 아끼셨던 분이셨답니다. 서생님의 글을 통해 제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가슴에 물결이 일렁입니다.
나좀살자님의 댓글
나좀살자 (yeonaim)전 갑자기 10년전 아빠를 먼저 떠나 보내신 친정엄마 얼굴이 떠오르네요. 할머님의 재입싱도 축하드리고 운동 열심히 하셔서 쾌차하시기를 바래요. 자꾸 걸으셔야 해요. 연세가 드실수록 걷는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구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