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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28)
- 감꽃마을 (dkemft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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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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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 -집을 얻기까지-
> <작년 11월의 상황으로 되돌아갑니다.>
>
> 내가 원하는 집을 구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 날마다 매달려야 했다.
> 에이전트에게 전화하고 ‘한국촌’ 벼룩시장을 뒤져보는 게 일과였다.
> 아들은 이제 하숙을 시키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고 했다. 둘이서 월 4000불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맞는 말이다.
> 그런데 또 하숙을 시켜야 하나?
> 나는 이제 더는 손자들을 하숙집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 하숙비 4000불을 낼 바에야 2000불 내외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얻어 셋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세어(share)하는 쪽도 살펴보기로 했다. 곧바로 ‘한국촌’을 샅샅이 훑어봤다. 시메이에 하나 보였다. 즉시 전화했다. 젊은 엄마 목소리다. 무척 상냥하고 친절했다. 우선 기분이 좋았다. 아들과 단 둘이라고 했다. 지금 대학진학 공부를 하는 젊은이가 있는데 곧 나간다고 했다. 다음 날 가보기로 했다.
>
> 버스를 타고 갔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를 두 번이나 하여 겨우 찾았다. 무엇이든 알고 나면 쉬운 것을 모르면 고생이다.
> 상상했던 것 보다 멀고 외진 곳이었다. 예쁜 목소리만큼 착한 인상의 30대 후반의 엄마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월 1300불이라고 했다. 셋이서 잘 수 있을 만큼 방은 넉넉하게 컸다.
> 그런데 함께 살 것을 전제로 이것저것 따져보니 만만치 않은 상황들이 나타났다.
> 첫 번째는 주방과 냉장고를 같이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냉장고는 미니 냉장고를 하나 구입하면 되겠지만 주방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할아비가 주방에 들락거린다는 게 상대에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 돈으로 따져보니까 3000불이면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아파트를 단독으로 얻어 사는 것 보다 1000불은 절약되는 계산이다.
> 두 번째, 손녀는 버스 두 번을 타야하고 손자도 40여분 동안 버스를 타야 등교할 수 있는 거리다. 무엇보다 손자가 문제다. 버스를 10분만 타도 잠을 잔다는 사실이다. 꼭 나와 함께 등하교를 해야 할 판이다.
> 아들내외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 주었다. 처음에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한참 뒤에 여러 가지의 문제가 많겠다며 아파트 쪽을 권했다.
>
> 그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갈수 없겠다는 전화를 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양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곤욕이다. 가게에 들어가면 그냥 나오기가 민망스런 성격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는 더더욱 안 될 일이라 다음 날 전화하여 전후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친절히 괜찮다고 하여 한시름 놓았다.
>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버스 타기 편리한 곳, 임대료가 저렴한 집을 찾아야 했다.
> 한국인 소개소 몇 군데에 전화했다. 에이전트 이강하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우선 친절한 말투와 적극성이 엿보여 믿음이 갔다.
> 그는 만나기로 약속한 정시에 콘도 앞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대로 깔끔한 외모에 예의 바른 30대 청년이었다. 3일 동안 둘러 볼 물량을 가지고 왔다. 사전 준비가 참 잘 되어 있었다. 역시 일을 잘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 그 날 HDB 3군데를 가 보았다. 모두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두 군데는 너무 낡은 아파트였고 한 곳은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임대료는 월 1600불~1800불선이었다. 환율이 1400선을 넘어가는 시기여서 콘도 임대료는 내려가고 HDB는 오히려 올라가는 추세라고 했다.
>
> 다음 날 오후 이씨와 함께 손자가 다니는 학교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손녀 손자가 모두 버스를 한 번에 타는 위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한 녀석은 두 번 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큰 녀석이 두 번 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 밤 6시, 손자 학교 인근의 HDB에 도착했다. 현지인 에이전트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30여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았다.
> 아파트 주변 환경을 살펴보고 버스 정유소의 안내판에서 버스 넘버와 행선지를 메모했다. 현지 에이전트는 약속시간을 한참 넘긴 뒤에 나타났다. 시간관념이 부족하기는 에이전트도 현지인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현지인 에이전트는 대부분 아파트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집이 비어 있는 경우는 모두 그렇게 한단다.
> 주변 환경도 학교의 통학 거리도 괜찮았는데 집이 엉망이었다. 거실 바닥은 낡은 비닐 장판이었고 변기도 싱크대도 너무 지저분했다. 이씨도 안 되겠다고 했다. 1600불짜리는 역시 그 값만큼의 가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 이씨는 아파트의 상태와 구조, 그리고 임대료를 대비하여 무리라고 판단되면 절대 권하지 않았다. 자세가 똑 바르다는 생각을 굳히니까 꼭 그를 통해서만이 집을 얻고 싶었다.
>
> 그 다음 날 간 곳은 손자가 다니는 학교 정문 앞의 HDB였다. 위치가 너무 좋았다. 밤8시 무슬림 복장의 중년 여성 에이전트와 만났다. 3층이어서 걸어서 올라갔다. 이 또한 오래된 아파트였다. 에어컨은 창문 형으로 큰 방에만 달랑 한 개 달려있었다. 화장실도 쓸 때마다 수도꼭지를 풀고 잠그고 해야 한단다.
> 손자의 등교 문제가 수월하기 때문에 그런 저런 어려운 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1800불인데 50불을 깎아 주겠다고 했다.
> 그런데 문제는 내가 2순위라는 것이다. 먼저 보고 간 사람이 결정하기까지 이틀이 걸려야 한다니까 또 가슴이 답답해 졌다. 계약금도 걸지 안했는데 내가 먼저 계약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현지인 에이전트는 나를 빤히 보면서 구두 약속도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했다.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관습을 생각하며 무심코 볕은 말이 부끄러움으로 되돌아 왔다. 신용사회가 바로 선진화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 아니나 다를까 먼저 보고 갔다는 사람의 구두약속은 지켜졌고 나는 그 집을 놓쳐버렸다.
> 나는 솔직히 먼저 하였다는 약속이 이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을 가졌었다. 이 또한 두 번째의 부끄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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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동안 돌아다녀 봐도 선뜩 얻을만한 집도 없고 집에 비해 월세도 만만찮아 또 다시 홈스테이를 생각했다.
> 우리 콘도 이웃에 한국인 엄마가 홈스테이를 하겠다고 한다기에 알아보았다. 한 사람이면 2000달러고 두 사람이면 3500달러라고 했다. 이 역시 선뜩 결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 고민은 계속됐다.
> 나를 무척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돈 가치의 끊임없는 추락과 충격적인 경제전망이었다. 아파트값은 반 토막이 날것이고 주식(코스피)은 500선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설이 떠돌았다. 세계경제가 동반 추락하기 때문에 2010년까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매일같이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 유비무환을 늘 달고 사는 나로서는 여간 힘든 심적 압박이 아니었다.
> 아무래도 1년은 더 버텨내야 하니까 한 푼이라도 아껴 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 또 아파트 쪽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 사이트마다 둘러봤다. 전화 할 만한데도 없었다. 이씨의 전화만 기다려야 했다.
>
> 이 틈에 이사할 것에 대비해야하는 여러 문제를 가디언과 상의하기로 했다.
> <가디언에 대해 실명을 밝혀두어야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울 것 같다. 사실 그간 가디언의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하였지만 혹여 결례가 될까 두려워 실명을 밝히지 못했었다. 가디언께서 행여 저의 이야기를 보시더라도 양찰하여 주시를 바랍니다.>
> 손우락 사장에게 전화했다. 언제나 무뚝뚝한 목소리다. 오늘은 이사하였을 때 전기, 수도의 계약해지와 보증금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 명의로 계약되어 있기 때문에 집 주인과는 상관없이 이사할 때 통보만 하면 곧 바로 처리(단전 단수)된다고 했다. 보증금은 사용요금이 정산되는 즉시 계약자의 새 주소지로 반환통지서가 우송된다고 했다. 우편에 동봉되어 있는 수표를 통장에 입금하든지 바로 찾아 쓰면 완결되는 것이라며 명쾌히 설명하여 주었다.
> 손자들 학교에 바뀐 주소를 알려주는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마음에 드는 집이나 빨리 얻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 도균이네 집이 자꾸 생각났다. 주방을 함께 쓴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아주머니가 너무 좋아 서로 돕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는데 미련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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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사장이 전화 왔다. HDB를 얻겠다니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HDB는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임대가 가능하므로 사전에 반드시 확인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다고 했다.
> 아들 전화가 왔다. 집 때문에 고민한다 싶으니까 돈 아낀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환경이 괜찮은 콘도를 얻으라고 했다. 아이들 등교는 스쿨버스를 이용하면 되니까 그 또한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말은 고맙지만 걱정 많은 내 팔자는 쉽게 적당히 살 수가 없었다.
>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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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20일 최원형 변호사로 부터 전화가 왔다. 교통사고 피해자 본인이 서명하여 주어야 할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니까 서명하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소송에 필요한 사고 조서는 경찰서에, 진단서는 병원에 요구하였다고 했다.
>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고 지점과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촬영한 사진 여덟 컷을 변호사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를 하기 위해서는 의뢰자가 많은 정보와 문제점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상식은 잘 알고 있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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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환율은 1525원으로 1500선을 고착시켰고 SGD도 1010이다. 1700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나로 하여금 더더욱 HDB에 집착하게 했다.
> 때 마쳐 이씨가 연락 왔다. HDB 세 군데를 또 보았다. 그 가운데 한 집이 마음에 들었다.
> 구형이기는 해도 8층에다가 두 방과 거실에 에어컨과 벽걸이선풍기도 달렸다. 큰 방에 설치된 붙박이 대형 책장과 책상이 썩 마음에 들었다. 리노베이션도 잘해서 깨끗했다.
> 월 1800달러면 내가 마음먹었던 범위어서 집세도 괜찮았다.
> 버스정유소도 100미터 거리에 있었다. 이씨는 지도에서 보면 손자의 학교와 얼마 안 되는 거리라고 했다.
> 손자들의 버스 편만 확인하고 계약을 하려고 작심했다. 콘도를 비어줘야 할 시간도 많지 않은데다 이제 더는 신경 쓰기가 싫었다. 너무 지쳤다.
>
> 다음 날 새벽 첫차로 그 HDB에 갔다. 손자의 학교까지 버스길로 걸으니까 20분이다. 어차피 버스를 타야 되겠다.
> 그런데 이게 원일인가? 학교 뒷문 큰 길 건너편에 얻고자하는 HDB가 보였다. 순간 어깨가 으슥했다. 육교 하나만 건너니까 바로 그 HDB다.
> 이씨에게 전화했다. 그 HDB를 얻자고 말했더니 그도 적극 권유하고 싶었다는 대답이다. 곧 나갈 수 있는 괜찮은 집이라고도 말했다. 빨리 얻어야 한다는 조급증이 나를 금방 불안감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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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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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의 글은 오로지 한 늙은이의 진솔한 삶의 고백입니다.
>아울러 아주 조그마한 경험이라도 섬세하게 기술함으로서 읽어주시는 분들의 실생활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한 달간의 방학을 잘 마치고 오늘 입싱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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