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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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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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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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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돌림이 하도 많은 세상이라 영어 못하는 나를 두고 ‘영맹’이라고 스스로 부른다.
처음에는 어떻게 살지 막막했지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니까 악이 받혔다. 지게 아니면 바지게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한국말 못하나 한국 사람이 영어나 중국어 못하나 그게 그것이지 다를 게 뭔가?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을 일도 없다. 다만 불편할 뿐이라는 생각에서 부딪쳐 보자는 배짱이 붙었다.
우리 내외는 인근 승송마트(sheng siong)에 갔다. 마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열대과일이다. 사과와 오렌지는 기본이고 손자가 좋아하는 망고, 아내가 잘 먹는 망고스틴 그리고 바나나를 골라 담았다. 비교적 값이 싼 닭다리도 샀다. 해물로는 새우가 가장 만만하다. 감자 숙주나물도 싸고 좋았다. 우유와 빵과 채소가 광주리에 넘친다.
계산대에 섰다. 나는 열심히 계산기만 바라봤다. 56.80이란 숫자가 나타났다. 얼른 50$ 짜리와 10$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주었다.
계산대의 아줌마가 돈을 받더니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물쭈물하다가 답답한 끝에 ‘뭐요?’가 튀어 나왔다.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아줌마도 멍하니 내 얼굴만 바라본다. 벙어리끼리 벌어진 해프닝이다. 나는 당혹스러웠고 아줌마 역시 답답하다는 눈치다.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노’라고 했다. 그제야 아줌마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잔돈을 거슬러 주며 ‘댕큐유’라고 했다.
영맹의 신고식은 이처럼 호됐다.
순간적인 곤욕을 치룬 우리 내외는 바깥에 나와 포복절도를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노’라고 하였느냐며 물었다. 아내의 대답은 ‘못 알아들으니까’ 노‘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명답이다.
뒤에 알게 된 말이지만 포인트 카드가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었고 없으니 없다고 하였으니 그 이상 정확한 대답이 어디 있는가?
’노‘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해결을 본 셈이다.
아하~ 무엇이든 난처하면 ‘노’라고 하면 되겠구나 하며 또 웃었다. 이 날만큼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은 전무후무했다.
문제는 계산기도 없고 가격 표시도 없는 재래시장 같은 데가 난처했다. 대부분 중국어를 하는 아줌마들인데 도통 무슨 소리를 하고 얼마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조건 10$짜리를 들어 밀었다. 모자란다는 눈치면 10$짜리를 한 장 더 내민다. 대부분 만사형통이다.
눈치코치로 말하기가 날로 익숙해졌다. 덕분에 동전이 소복하게 모였다. 이렇게 마트에 몇 번 들락거리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들이 과학 과외를 받는 파크웨이 학원센터에 갔다. 14층 건물의 층마다 영어 수학 과학 등 소규모 학원들이 빼곡히 들어앉았다. 손자들과 1시에 만나기로 하고 건너편에 있는 Park way Parade에 갔다.
지하에서부터 3층까지 아이쇼핑을 했다. 일단 어디에 무엇을 파는지 알아두기로 한 것이다. 지하층 안쪽에 코리아 마트가 있다. 참 반갑다. 젊은 한국 아주머니가 정겹다. 매장은 적지만 찬거리는 거의 다 있어 괜찮다. 둘러만 보고 그냥 나올 수가 없어 1회용 김과 참기름 한 병을 샀다.
며느리가 한국마트에서 주문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갔지만 아무래도 값이 좀 비싸다 싶은데다 50$이하는 배달도 안 돼 과일 채소나 닭다리 쌀 까지도 현지 시장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호주 쌀은 한국마트에서 파는 일본쌀보다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았다.
넓은 지하식당 앞 쪽 자리에 코리아 식당도 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삼계탕, 아내는 비빔밥, 손녀는 라면 밥, 손자는 생선 밥으로 제 각각 다른 메뉴로 시켰다. 맛보기다. 맛에 대한 소감은 말하지 않겠다. 한국 교민의 집이라는 반가움의 표시였으니까. 그런데 한국인 주인이나 종업원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는 했다.
지하 입구 쪽에 있는 디지털 사진 현상코너는 낯익은 곳이다. 지난 해 찍은 손녀 사진을 이곳에서 뽑았었다. 메모리카드를 넣고 자기가 조작하면 원하는 사진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2층 가전제품 코너에는 삼성과 엘지가 있어 가슴이 뿌듯했다.
여느 쇼핑몰처럼 이곳 역시 옷 가게는 사방에 널려있다. 여자들의 의류가 대부분이어서 여자를 위한 여자들만의 몰 같다.
3층 자이언트에 갔다. 진열대마다 살펴봤다. 모르는 영문표기가 있어도 그림만 보면 무엇이든 사는 데는 문제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마트에서 늘 사는 찬거리만 샀다. 그리고 아들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우리나라 신용카드는 Fairprice, Sheng siong 같은 현지 마트에서는 통하지 않는 불편도 있지만 글로벌 대형마트와 쇼핑몰 일반 상품 매장의 경우는 무사통과다.
손자들과 약속한 학원 빌딩에 있는 맥도날드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 손자들은 햄버그에 감자튀김과 콜라를 시켰다. 게눈 감추듯이 금방 하나씩 해 치웠다. 꼬르륵 트림 한 번하면 상황 끝이다.
손자들이 맛있게 잘 먹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덧없이 행복하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집으로 왔다. 상당 기간 동안 셔틀버스가 다니는지 몰랐었다. 정보의 중요성이다. 이웃과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노인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 다가가는데 소홀 했던 결과다.
좀 큰 바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얻은 싱가포르 관광지도를 꺼냈다. MRT와 오차드 로드의 상세도를 꼼꼼히 보았다. 화폐 단위와 버스 택시에 대한 정보도 눈여겨 두었다.
클락 키와 보트 키, 보타닉 가든, 국립 박물관, 엘리자베스 산책로, 센토사 섬, 주롱 새공원, 주롱 파충류공원, 싱가포르 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차이나 타운, 오차드 로드 순으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면세 백화점 ‘DFS 갤러리아 워크’는 광고란에 소개되어 있었다.
지난 해 손자들과 함께 센토사와 보타닉 가든은 가 본적이 있다. 우선 제일 찾기 쉬워 보이는 오차드에 나가기로 했다.
녹색 라인의 인터체인지인 시티홀에서 빨강 라인으로 옮겨 탔다. 네 번째 역인 Orchard MRT에서 내렸다. 오차드 로드를 가리키는 지하통로를 따라갔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타고 내린 뒤 나타난 오차드 네거리는 사방에 고층 건물을 껴안고 있었다. 서울 한 복판과 같은 번화가라고는 하지만 헐렁했다. 하기야 인구밀도가 싱가포르는 6,652(㎢)명인데 반해 서울은 17,217(㎢)명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점은 ‘인종 시장’이라는 점이다. 황색, 백색, 검정, 회색 얼굴들 그리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키 작은 아가씨와 150Kg 이상 되어 보이는 초비만 뚱보들이 많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하기야 우리도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모르는 군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들과 걷고 스치는 사이 나도 그들과 같다는 동질의식이 느껴진다. 나도 마치 영어께나 하는 사람 같은 착시에 빠지기도 한다. 영어 못하는 ‘영맹’이라고 얼굴에 씌어 있지는 않으니까 그렇겠지만...
그래서 당당히 걸었다. 좌우로 늘어선 쇼핑몰에 다짜고짜로 들어갔다.
출입문에 수위가 있는 곳은 좀 꿀리기도 했다. 말을 걸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유일한 무기인 ‘No’를 들이대면 해결될 것이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니까 삼각원통의 특이한 건물(WHEE LOCK PLACE)이 첫눈에 들어 왔다. 무조건 올라갔다. 점포가 좌우로 있고 사무실도 있는 것 같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고 복도를 따라가다 보니까 다른 건물이 나타나기도 했다. 연결되어 있는 건물들이다. 싱가포르 빌딩의 특징이다.
싱가포르 건물은 같은 모형이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건축의 예술성에 역점을 두는 정책 때문이다.
여성복 전문매장으로 보이는 ‘ZARA’에 들어갔다. 실크 소재의 여성복이 많았다. 가격도 80~150S$정도다. 괜찮다 싶어 둘러보았다. 스포츠 복도 있고 신발도 있었다. 아내는 실크 블라우스에 눈길이 갔다. 100% 실크에 디자인도 새로워 자꾸 사라고 권유했다.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길 건너 SHAW HOUSE에 갔다. 1층은 향수와 오만가지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렸다. S라인 아가씨들이 참 예뻤다. 여러 인종들의 미녀 경연장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보았던 SK-II 코너가 있고 우리나라 영화배우가 광고모델이다. 우리나라브랜드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배우 심혜진과 장진영이 모델로 나와 있지만 사실은 일본 제품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 재벌 SK 브랜드인줄 알았었다.
SK의 이니셜은 비밀의 열쇠(Secret Key)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놀랬다.
역시 늙어도 여자는 여자였다.
아내는 화장품에서부터 가방, 의류, 신발 등 유명 브랜드의 족보를 쫙 끼고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1층에서 3층까지 원스톱으로 설치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이곳 저 곳을 둘려 보았지만 아내가 입을만한 의상은 별로 없는 눈치다. 쇼핑몰의 지하에는 어김없이 마트가 있다. 온 걸음에 먹을거리를 사가려고 했으나 동네 마트보다 훨씬 비싸다.
획 둘려보기가 바쁘게 인근 DFS에 갔다.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웠으나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주로 가방매장이 많은 게 특징이다. 버버리, 구찌, 팬디, 지방시 등 세계유명브랜드는 다 모였다. 버버리 매장에 들어가 봤다. 아가씨가 우리를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놀란 것은 우리였다.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맞받았다. 한국말을 잘하는 것으로 여겨 다가갔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오가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쪽에서 핸드백을 고르고 있는 부부가 자기들 끼리 우리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부부가 영어를 잘 했다. 부러웠다. 아내가 인사를 건너니까 그쪽도 반가워했다.
그 부인은 아이들과 싱가포르에 있고 남편은 다니려 왔다가 시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버버리 핸드백을 고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면 일단 면세를 받으니까 세금 7%는 덕을 본다는 이야기다. 물건 영수증을 가지고 어디로 가서 제시하고 면세 스탬프를 받고 어떻게 한다고 설명하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지리를 모르니까 쇠귀에 경 읽기다. 일단 정보는 알게 되어 큰 수확이다.
서 너 군데를 돌고 나니까 집에 가야할 시간이 바빴다. 손자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오후 2시니까 12시 반까지는 집에 가야 점심준비를 할 수 있다.
불이 나게 나와 MRT로 향했다.
오늘 알게 된 정보는 이곳 쇼핑몰의 개점은 오전 10시에서 11시까지라는 것과 다국적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영어는 몰라도 통하는 길은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오는 길은 몸도 무겁고 다리도 아팠다. 늙은이의 한계다.
그래도 나돌아 다녀야 한다는 답을 찾아 좋았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것도 문제다 싶다. 며칠 뒤 또 나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리는 말씀 : 쇼핑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다니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음 하편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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