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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1)
  • 조이스 (blue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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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1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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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어른신 글에서 배움을 얻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글의 번호가 100번 1000번 되시기를 외람되게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 흉보기-
>
> 손자들의 흉을 좀 봐야겠다.
> 손자 흉을 보는 할아비가 쩨쩨하고 남부끄러운 짓거리인지도  모른다.
> 남이 보고 들을 때는 분명 흉이지만 할아비나 할머니 그리고 아빠 엄마 눈으로 보면 흉이 아니라 ‘커가는 과정’으로 치부할 수 있다. 바로 이게 탈이다.
> 녀석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 벗는데서 부터 시작해 보자.
> 가지런히 정리할 줄을 모른다. 신발 한 짝은 출입문에서 한 발 뒤에 뒹굴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처럼 넓은 현관도 없고 신발장도 없는 이곳 특유의 집 구조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콘도에 따라 다른지는 모르겠음)
> 그나마 덜 창피한 것은 옆집 인도사람들의 신발 벗어 놓은 태도가 우리 아이보다 더하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도 없이 신발은 제 멋대로 굴러다닌다. 한번은 신발 한 짝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있어 발로 밀어주기도 했으니까...
> 책가방은 늘 문전에서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기 마련이다. 자기들 방에 내려놓지를 못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바닥에 내 팽개친다. 저고리도 소매가 뒤집어 진채 홀라당 벗어 던진다. 한 마디로 쓰레기 취급이다. 실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탓이 크기도 하다. 옷에 밴 땀 때문에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
> 한 발짝 뒤에 오는 손녀가 샤워를 하면 손자도 따라 들어가 함께 샤워를 한다. 샤워 실 앞이 볼거리다. 두 녀석의 팬티가 또르르 말려 가랑이 두 구멍만 빤히 보인다.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한다. 하도 그래서 디카에 담아두고 있다.
> 제발 옷을 벗을 때 뒤집어지지 않도록 벗고 뒤집어 졌으면 바로 고쳐 놓으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타 일려도 소용이 없다. ‘예’하고 돌아서면 제자리걸음이다.
>  ‘도대체 누구를 닮아 저 모양인가?’ 아내는 짐짓 ‘아마도 당신이 어릴 적에 그랬는가보다.’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 웃고는 있지만 저 버릇이 언제까지 갈지 걱정도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싶어서다.
>
> 그렇다고 밥 하나라도 깨끗이 먹는가? 거짓말 좀 보태서 돼지 밥 먹은 뒤끝 같다. 여기저기 밥알이 구르는가 하면 밥풀이며 찬 찌꺼기가 밥상에 칠갑을 한다.
> ‘얘들아 밥알 하나가 어떻게 밥상에 오르는지 아느냐? 쌀알 하나하나에 농부들의 정성이 담겨 있는 땀의 결실이란다. 그러니까 한 알맹이의 쌀이라도 귀하게 여겨서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그럴듯한 연설을 하지만 먹힐 리가 없다.
> 사실 내가 손자들 나이 때를 회상하면 요즘 아이들의 이런 복이 어디 있는가 싶다.
> 쌀밥을 먹기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겨우 제사 때나 설날이 되어서야 구경도 하고 먹을 수 있었다면 지금 30대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오죽하면 피죽도 못 얻어먹고 컸다고 하겠는가.
> 요즘 젊은이들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낭비하는 쾌락주의로 치닫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내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삶의 가치를 제대로 교육 시키지 못한 허물이 우리 세대에 있음을 내 스스로 반성해 보기도 한다.  
> 말이 잠깐 옆길로 새었네.
>
> 손자들의 엽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부를 한답시고 노트와 책을 끄집어 내어놓으면 거실도 방바닥도 쓰레기 더미를 방불케 한다. 책은 책대로 뒹굴고 노트 연필 지우개는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씩이다. 오죽하면 ‘너희들 물건에는 발이 달렸다’고 했을까?
> 손자는 자르고 붙이고 그리기를 무척 좋아한다. 하루에 한 두 번씩은 예정되어 있는 일과다. 가위와 칼, 풀과 테이프가 많기도 하다. 색종이 재고는 과히 인쇄소다. 재료가 넘치다보니까 귀한 줄을 모른다. 닥치는 대로 자르고 붙이고 색칠을 하다가 내버려 둔다.
> 아내와 나는 종잇조각 하나도 아까워서 쉽게 버리지 못한다. 모아두고 메모지로도 쓰고 기름 흡착제로도 사용한다. 하지만 너무 아깝다.
> 색연필과 물감은 서랍장마다 빼곡히 차있고 지우개는 토막토막 굴러다닌다.
> 연필종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쓰다가 내버려 굴러다니는 필기구와 물감이 한 짐이다. 아까워 버릴 수도 없고 손자들에게 더 쓰라고 해도 두 번 다시 쓰지 않는다.
> 사흘이 멀다 하고 학용품이 가장 많다는 파크웨어에 가야 한단다.
> 절약과 정리의 개념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 싶으니까 때로는 화도 난다.
> 아무리 제 자리에 챙겨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도 대답만 “예‘다.
>
> 치울 줄은 모르고 어지르기만 하다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학교에 가져갈 책이며 준비물이며 모두 어디에 있는지 자기들도 모른다.
> ‘그러니까 쓰고 나면 제 자리에 챙겨두라고 말하지 않더냐.’고 하면 얼굴만 붉힐 뿐이다. 우리 내외는 손자들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다 하루해를 다 보내는 기분이다.
> 오죽하면 녀석들 엄마가 ‘한 달 동안 잘 치웠다고 할머니가 사인하면 상금으로 10불을 주겠다’고 제의했을까. 그 효과는 단 하루에 그친다. 내가 상금을 배로 인상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 하루 이틀은 실천을 한답시고 정리를 해 보지만 끼리끼리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노트와 필기도구 할 것 없이 마구 쓰러 모우니까 하나마나다. 결국 두 번 일이다.
> 아내는 한국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는 더더욱 바깥에서 마음껏 뛰놀 수 없는 환경이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는 노는 것과 어지럽히는 것은 다른 성격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
> 한 번은 손녀가 전화를 받고 휴대전화기를 잃어 버렸다. 서너 시간 전에 일인데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를 못한다. 온 집안을 뒤졌으나 오리무중이다. 물론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벨 소리도 없다. 분명히 바깥에 가지고 나간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집안에 있어야 하는데 귀신 곡할 노릇이다. 책장, 침대, 소파, 방과 주방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허사다.
> 예전에 아내가 친구 이야기를 하고 박장대소를 했던 적이 있었다. 휴대폰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몇 시간을 찾아 헤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여 아내가 그 친구처럼 냉장고나 세탁기에 넣은 것이 아니지 싶어 그 곳 저 곳 다 뒤졌다. 일시적이지만 아내까지 혐의를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 네 식구가 모두 황당했다. 누가 왔다가 갔다면 틀림없이 도둑으로 몰렸을 것이다. 꼬박 서너 시간을 허비하고 포기했다. 아마 쓰레기통에 휩쓸려 들어간 것 같다는 결론으로 겁먹은  손녀를 위로했다.
>
> 아이들이 잠든 야밤이다. 여느 때처럼 잠이 오지 않아 방과 거실을 오가며 잡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화기의 행방이 하도 묘해서 집전화기를 들고 또 다시 시도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한 전화 벨 소리가 가냘프게 들렸다.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따라갔다. 이게 웬 일인가 소파 밑에서 벨소리가 울리고 있지 않는가. 소파의 방석을 들쳐도 없었던 전화기였는데 어이가 없다. 소파의 방석을 들어냈는데도 전화기는 보이지 않고 소리는 나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소파를 뒤집어 놓고 보니까 소파 다리 옆 천과 천 사이에 가까스로 걸려있었다.
> 어떻게 이런 골짜기로 흘려들었을까? 미스터리다. 어쨌든 전화기를 찾아 한 시름 놓았다.  
>
> 다음 날 아침 손녀는 어두운 사슬에서 풀러나 환한 얼굴로 등교했다.  
> 이런 사건이 있었지만 그 효과는 채 사흘이 가지 않았다. 아빠 엄마가 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잘 정리하고 있느냐고 다그쳐도 웃고 만다. 전화로 따져본들 어디 실감이 나겠는가.
> 이국땅에서 외롭고 고달프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그 누구도 나무랄 수도 없다. 그저 말만하고 그들의 처분에 맡기는 것 밖에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이다.
>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리를 잘하는 것이 곧 공부도 잘하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가짐이 머리도 맑게 하기 때문이다.‘라는 판박이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사실 알아들을 리도 없는 황량한 넋두리에 불과한 말장난인지도 모른다.
>
> 물건의 소중함을 설명하기 위해 할아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 처음에는 신기한 듯 듣다가 믿어주지 않는다.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반응이다. 내 추억에 나만 취해 버린 꼴이 되었다.  
> “지우개는 손가락이었다. 공책은 온통 침 범벅에다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자전거 타이어 조각이 지우개로 등장하기도 했다. 크레용은 12색이 최고였지만 잘 그려지지도 않았다. 내가 하얀 노트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우등상을 받았을 때였다. 너무 신기하고 아까워 잘 쓰지도 못하고 아끼기도 했다. 지금의 노트와 비교할 수 없는 저질이지만 그 때만해도 한 반에 흰 공책을 가진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지금 너희들이 이렇게 좋은 학용품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은 할아비와 그 아버지들이 열심히 땀 흘려 모우고 아꼈기 때문이란다.”
> 아내는 아이들에게 통하지도 않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한다면 핀잔을 준다. 하기야 60년 전의 옛날이야기이니까 지금 아이들이야 실감이 나겠는가.
>
> 손녀가 귀국한 이후의 손자는 더 심하게 산만하다. 아무리 어지럽히고 정리정돈을 하지 않아도 밉기는커녕 더 정겹다.
> 남다른 손자 사랑은 차치하더라도 할아비만 처다 보고 있는 손자라서 그런 것 같다.  
> 안에서는 이처럼 무질서하지만 바깥에서는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들이라는 좋은 평판이 이 정도의 흉이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치우고 또 치우며 정리한다.
> 때로는 우리 아이들만 이 부분에 있어 독보적인가? 다른 집 아이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    
> 정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잘잘못을 분간 못해서는 안 된다는 “흉 각각 정 각각”이란 속담이 자꾸 귓전을 맴돌지만 어쩌랴.
>
>
>드리는 말씀 : 그저 ‘심심풀이’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만 그 실은 자모 하나, 용어 하나, 비유법과 맞춤법 하나 그리고 띄어쓰기까지도 꼼꼼히 챙기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말과 글을 배우려고 온 사람들로서 우리 것부터 바로 알고 쓰자는 생각 때문입니다.
>비록 잡담수준이지만 생활정보와 상식을 전해 드리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아는 것이 짧다보니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대목도 있고 오류도 많을 것입니다. 가감 없는 채찍과 성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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