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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폴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진이 안 옮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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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irisj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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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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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안성면 김광화·장영란 부부가 사는 법
익숙한 몸짓에 지겨움이 아닌 신명이 배어들어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몸짓이랴.
부엌에서 일하는 그의 뒷모습이 그러하다.
“요리하는 재미에 눈떠가고 있다”는 김광화(53)씨.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수선스러운 활기를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아내 장영란(51)씨는 책을 보고 있다.
이 집에선 꽤나 자연스런 풍경이다.
아내에게 ‘밥상차리기 안식년’을
영란씨는 지금 ‘밥상차리기 안식년’을 누리는 중이다. ‘밥상차리기 안식년’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 광화씨의 적극적 제안으로 실천에 옮겨졌다.
“아내가 집이라도 며칠 비우게 되면 처음엔 준비해두고 간 반찬으로 그럭저럭 먹다가 나중엔 밥상이 점점 초라해져 간다. 차려먹기 귀찮을 땐 대충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고. 아내의 빈자리가 그렇게 방치되더라.”
그래서 요리의 세계에 입문한 지 3년. 슬슬 자신이 붙어 ‘밥상차리기 안식년’까지 오게 됐다. ‘남자가 왜?’라는 권위의식이나 체면치레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내의 큰아들’로서 차려진 밥상을 먹기만 하던 걸 벗어났달까.”
언젠가 아내가 한 말, “나도 마누라가 필요해요”란 말을 잊지 않았던 터다.
광화씨에게 요리 혹은 밥상차리기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지고 스스로 당당해지는 일이다. “살림살이의 참맛이라면 아무래도 요리에 있다”며 “두려움으로 남겨두었던 부분이 앎과 기쁨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고 자랑까지 한다.
그에게 요리는 ‘자기 안의 가능성 드러내며 살기’의 한 분야인 것이다.
“올해는 고추장도 80% 정도는 내가 담갔을 게다. 모르는 건 아내한테 자문을 구해가며 만들었다. 만들기 과정을 다 기록해 두었으니 내년에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 삶
영란씨는 “밥상 차리고 반찬 만드는 노동에서 해방된 것보다 끼니 때마다 겪던 ‘뭐 해 먹지?’라는 부담감에서 해방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이고 즐거움”이라 말한다.
광화씨는 “똑같은 말이라도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에는 ‘뭐 해 먹지?’가 스트레스였다면, 이제는 내게 묻는 설렘으로 ‘뭐 해 먹지?’ 하는 것이다”고 그 변화를 설명한다.
안식년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영란씨가 정한 마음가짐은 이렇다. 남편이 흘리고 벌리고 마뜩찮
게 하더라도 ‘그냥 보아 넘기기’.
“내가 간섭하는 시어머니가 되면 남편에겐 요리하는 게 시집살이가 돼버리잖나. 그러면 서로가 재미없다.”
남편이 일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영란씨가 하는 일은 또 있다. “음∼잘하는데” “으응 맛있겠는데” “딩동댕∼”…. 적시에 진심으로 추임새 넣기. 추임새도 음식에 섞여들고 스며든다.
불현듯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광화씨가 내닫는다. “어, 양파가 필요하네.” 기껏 밖으로 양파 가지러 가는 일. 하지만 번쩍 후다닥 달리는 이유가 있었다.
“몇 해 전 우리 집에 도시 아이들 몇 명이 와서 잠깐 지낸 적이 있다. 그 아이들 가운데 일곱 살 진호가 내게 영감을 주었다. 아래채를 지으려고 벽돌 옮기기를 하던 참인데 진호는 계속 수레를 끌면서 뛰고 달렸다. 아이들은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더라. 진호가 내게 준 영감은 바로 일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일을 호기심으로 하면 달릴 수 있구나’. 그래서 그는 못자리의 모가 얼마나 자랐을까, 아침에 일어나 궁금하면 달린다. 봄비에 고사리가 얼마나 올라왔을까, 어서 가보고 싶어 걸음이 빨라진다.
“일이 바빠 달리면 스트레스지만 호기심으로 달리면 기분이 좋다.”
마음이 몸을 존중하는 몸짓이 ‘몸놀림’이라면 그 반대는 ‘몸부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몸놀림 끝에 드디어 밥상이 차려졌다. 잡곡밥에 비지찌개, 양념장, 김치, 취나물 냉이 개망초
나물. ‘나물 캐는 사내’ ‘앞치마를 사랑하는 사내’ 광화씨가 차린 봄날의 밥상이다.
돈을 쓰는 대신 몸을 쓰는 삶
그 밥상처럼 소박하고 조화로운 하루하루. 광화씨는 “하나의 선택이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선택의 빅뱅’. 한번의 선택이 엄청난 폭발을 가져와 삶을 근본부터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선택의 빅뱅은 흙으로 돌아온 일이다.
현재 광화씨 가족이 사는 곳은 무주 안성면 진도리 망등양지마을.
전국지도를 펼쳐놓고 마음 속으로 이곳저곳을 여행하길 하루에도 수십 번 되풀이하던 끝에 1996년 봄 서울을 떠났다. 20년 가까운 서울생활을 어렵사리 정리하고 경남 산청으로 내려와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간디공동체를 꾸렸다. 그로부터 2년 후 무주로 귀농해 흙집 짓고 농사 짓고, 광화씨로 말하면 이제는 밥도 짓고, 그렇게 ‘짓고’의 삶을 살아 왔다.
“온몸을 움직이는 삶은 내게 많은 자신감을 줬다. 돈으로는 맛볼 수 없던 자신감이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몸 살림으로 마음을 치유해온 자신의 경험을 두루 담아 최근에 책도 펴냈다. 《피어라, 남자》(이루).
“예전에는 쪼잔하고 상처도 잘 받고 잘 삐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그가 자기생일상도 손수 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손수 생일상 차리기’는 그에게는 자존감을 높이는 의식의 하나.
“내 인생 내가 즐거워서 축복하는데 뭐 남 눈치 볼 것 있나. 내 인생 재미없는데 옆에서 생일축하 노래 불러줘 봐야 무슨 흥이 나나.”
그는 돈을 쓰는 대신 몸을 쓰는 삶에서 흥을 찾았다.
“소비는 만족을 주지만 내면에서 솟는 기쁨은 주지 않더라.”
몸을 쓰는 것은 돈에서 좀더 자유로워지는 길이기도 했다. 첫 실험으로 뒷간을 지어 봤다. 나무 흙 갈대 억새 볏짚 같은 재료들은 주변에서 구하고 단지 못값만 만원 들어간 뒷간. 그 뒷간은 그를 돈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토끼장, 닭장, 오리장, 염소막 등등을 거쳐 온식구 살 집도 지었다.
“먹줄 튕겨서 네모 선이 만들어졌을 때 ‘아 이제 집 되겠다’고 설레었던 기억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미묘한 경계가 주는 흥분이랄까.” 집 짓던 때를 돌아보는 영란씨의 말이다.
종이 위 도면이 땅 위에서 집으로 되어가는 과정, 즉 돌 나르고 삽질하고 주춧돌 놓고 기둥 세우고 문 달고 지붕 씌우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완성돼 가는 그 순간순간이 축제 같았노라고.
광화씨는 “집이라는 결과물만 놓고 보면 집을 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정에 집중하면서 하나하나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집이 완성된다”며 “이렇게 몸은 마음이 갖는 두려움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아이 속을 썩이지 않는 부모’ 되기
집을 지으면서 얻은 깨달음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이어졌다. “흔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앞날을 강조한다. 몸은 지금 여기 있는데 마음은 자꾸 먼 미래를 좇게 한다. 그러나 이게 지나치다 보면 자칫 꿈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르치는 꼴이 되고 만다. 진정한 교육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자니 우선 몸을 몸답게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게 필요했다.”
무주에 와서 살아온 동안 아이들을 키운 학교는 자연. 2001년 봄, 딸 탱이(22)와 아들 상상이(15)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집과 들판에서 부모와 함께 일하며 스스로 알아서 컸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느냐”는 이들 부부가 그간 숱하게 들은 질문.
영란씨는 “상상이가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 잘 싸고 그런 것만으로도 이뻐 죽겠다. 그런데 학교에 보냈으면 내가 과연 그 정도 수준에서 애를 이뻐해줄 수 있었을까 반문하곤 한다. 나 역시 도시에 살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냈더라면 성적이나 시험이라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없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회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보니 편해졌다.
“결국 그게 끊임없이 사회가 줬던 불안이고 ‘내 안의 불안’이었더라. 정작 애들은 불안해하지 않는데…. 나는 시험치는 꿈을 아직도 꾼다. 시험은 불안의 표상이지 않나.”
상상이는 혼자 수학을 공부하면서 원리를 이해하면 ‘아하 그렇구나’ 기쁨을 느끼면서 넘어간다. “채점했을 때 가령 80점이라 하자, 100점 맞을 때까지 더 머리를 싸매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수학을 왜 공부하느냐의 차이다. 학교는 100점을 요구하지만 상상이에겐 점수라는 결과가 아닌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경쟁 입시 위주의 학교생활이란 자기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시간을 주지 않기 마련. 아이들은 공부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자연히 부모와도 말이 잘 통하고 친밀해졌다.
광화씨는 “이제는 아버지로서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조차 많이 옅어졌다”며 “그저 아이 속을 썩이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산골에 살면서 새로 배운 부모 역할, 입시교육을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부부가 함께 쓴 책 《아이들은 자연이다》(돌베개·2006)에도 담겨 있다.
아이들은 공부를 생활로 끌어들였다. 상상이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보고 막걸리를 빚어보기도 하고 텃밭농사도 지었다. 탱이는 천연염색을 하고 전통무예를 배우러 길 떠나기도 했고 ‘우리쌀지키기100인100일걷기’에도 참여했다. 자기가 살 방을 직접 짓기도 했는데 그 경험은 계간 《귀농통문》에 <열여덟 여자아이의 내집 짓기>란 제목으로 1년간 연재됐다. 자신의 요리경험을 살려 어린이들에게 제철요리법을 알려주는 《열두달 토끼밥상》(보리·2008)이란 책도 냈다.
영란씨 역시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2004) 《자연 그대로 먹어라》(조화로운삶·2008) 등을 펴냈다.
“우리 식구가 무지 게으르게 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하자주의’자들”이라는 영란씨의 말처럼 식구들 모두 노는 듯 일하는 듯 많은 것들을 일구어내고 있다.
‘무릎을 꿇고 만난 세상’
온식구가 ‘몸공부’를 해온 지난 시간들. 광화씨는 이제 몸과 마음이 서로 갈등할 때면 먼저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그 선택을 그는 ‘몸권력’이라고 이름붙였다.
“몸 권력이 회복되는 만큼 마음도 꾸밈을 버리고 솔직하게 바뀌는 것 같다.”
몸의 균형 맞추기도 생활로 끌어들였다. 양손으로 밥먹기도 그중 하나. 왼손놀림은 서투르고 느리다. 그러니 지금 내게 급한 일이 무엇인가 돌아보는 ‘젓가락질 명상’이 절로 된다.
다음은 위아래 불균형 맞추기. 농사짓는 내내 풀 뽑을 일 있으면 그는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는 것은 패배나 항복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그러기에 무릎 꿇고 일한다는 건 내게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다. 억눌린 잠재의식을 치유하는 혁명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세계도 만난다. 곡식과 풀, 그리고 벌레를 더 잘 알게 된다. ‘무릎을 꿇고 만난 세상’이다.
“무릎 꿇는 데 맛을 들이자 나중에는 아예 생활 속에서 이를 두루 응용하고 싶어졌다. 우리 집에 오는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면 무릎을 꿇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내 눈이 있을 때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연다.”
자칭 ‘부부 연애 전도사’
요즘 광화씨의 관심사는 아내와의 연애다. 결혼생활도 어언 25년. 아내와 살뜰한 말 한마디, 그윽한 눈길 한번 오가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한다.
“하지만 외로움이 숙명이 되지 않으려면 부부 사이의 솔직한 관계가 더없이 소중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아내에게 외롭다는 말 대신 더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여보, 나 좀 안아주구려.”
‘부부 연애 전도사’를 자처하는 광화씨는 “부부가 하는 연애는 총각시절의 연애보다 한결 솔직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참된 시작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에 따르면 부부 연애의 시작은 장점 바라보기. “이제 우리는 서로를 바꾸고 싶은 마음보다 서로 닮고 싶은 마음이 더 많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에너지는 들인 공력에 견주어 효과는 극히 적다. 반면에 상대의 좋은 점을 닮고자 하는 노력은 서로를 상승시킨다.”
아내를 닮고 싶은 게 많다는 광화씨. “수다 떠는 걸 닮고 싶고, 사람 좋아하는 걸 닮고 싶고, 다정다감함을 닮고 싶고, 집중하는 힘을 닮고 싶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연의 고리를 잘 살리는 사회성을 닮고 싶고….”
부부 연애가 준 선물이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닮아갈까 생각하면 설렌다는 광화씨.
무수한 설렘들이 있어 삶이 꽃핀다.
책임감에 짓눌려 살고 일에 짓눌려 살고 야망에 짓눌려 사는 이들에게 광화씨가 건네고 싶은 말은 이것. “이기는 삶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다움을 살리는 삶을 살라”는 것. 삶이 시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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