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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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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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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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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시비와 소음전쟁-(2)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하던 손녀의 얼굴은 찌그러졌다.
짜증스럽게 ‘노‘라고 한다며 앞으로는 전화를 않겠다고 했다.
이때만큼 영어를 할 수 없는데 대한 자괴자탄(自愧自嘆)에 빠져본 적이 일찍이 없었다.
영어만 잘 했더라면 이미 싱가포르 정부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집주인들의 횡포가 계속 된다면 싱가포르의 이미지는 추락할 것이고 유학생 유치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놈의 영어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이래서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려면 영어가 필수불가결의 수단이라는데 절감하며 긴 한 숨만 내 뱉었다.
주인의 사기성을 어디에서 확인하고 도움을 얻을 것인가? 전전긍긍하던 차에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대사관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참 그렇구나. 귀가 솔깃했다.
  대사관에서 에이전트에게 전화하면 싱가포르정부에 알리게 될까봐 효과 100%라는 설명이다. 중개업을 못할 수도 있어 겁먹는다고 했다. 그럴듯한 말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주기를 싫어하는 나의 성격은 금방 전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확인하고서도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이틀을 보냈다.
이 마당에 무슨 체면인가?
‘에라 모르겠다.’하며 버튼을 눌렸다. 젊은 여직원이 받았다.
집세 문제 때문에 여쭤볼 말이 있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두 번째 전화를 받은 직원은 중년 여자의 목소리인데 무척 친절했다. 무슨 말이라도 금방 들어줄 것 같은 친근한 목소리에 힘을 얻었다.
도움의 요지는 이랬다.
첫째 셋집 계약서 작성 때 영어를 전혀 할 수 없는 집사람에게 통역을 통한 내용설명도 없이 사인만 하라고 하여 아무 내용도 모르고 사인을 하였다는 불법성(?)과 두 번째는 소음 때문에 살 수가 없어 해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금방 ‘잘 알겠다.’며 에이전트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일의 성패야 어찌 되었건 나의 장황한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고 일단 해 보자는 긍정적인 자세가 눈물겹도록 고맙고 반가웠다. 그래서 ‘내 조국이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틀 뒤 에이전트와 통화하였다며 한 번 연락이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직통전화를 가르쳐주었다. 결과도 알려주고 무슨 일이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여 달라고 했다.
너무 벅찬 감격을 안겨준 대화였다.
‘덥석 일을 저질러 놓고 대뜸 도와달라는 말씀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교민들의 권익을 지키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대사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그 분의 심지(深智)와 겸손은 참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며칠 뒤 에이전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일 모시에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해결되었구나 싶어 어깨춤이 저절로 나온다. 대사관에 전화하는 것조차 말렸던 아내에게 으스대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약속된 날에 30대 중반과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에이전트 두 명과 기술자라는 남자 두 명이 함께 왔다.
아내는 젊은 여자 에이전트가 계약서 작성을 하였다고했다. 에이전트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고약한 인상은 아니어서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나는 에이전트와 한동안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은 입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할 수 없는 답답함이 나의 표정을 어둡고 거칠게 하였을 것이다.
손녀를 통해 소음이 어느 정도인가 들어보라고 다그쳤다. 에이전트들은 고개만 끄덕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항의 했다.
집을 보여줄 때 소음을 숨기기위해서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에어컨을 켠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사기 친 것이 아니냐고 말해달라고 했으나 손녀가 ‘사기’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라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표현을 한 것 같다.  
대답은 이외였다. 자기들은 소음에 대해선 문제가없다고 했다. 소음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도리어 역공을 한다. 참 어이없는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뒤에 알게 되었지만 싱가포르에는 주택에 대한 소음의 법령이나 규제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소음 진동 규제법에 따라 실외소음기준 65데시벨(실내 소음도 45데시벨) 이상이면 제재를 받음>
법이 만능인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황 앞에 허탈해 진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대사관에 의해 그들은 현장에 왔기 때문이다.
나는 재차 다그쳤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이니까 어떻게든 오늘 해결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소음을 막기 위한 장치를 하려고 기술자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방 세 개의 창문을 자로 재고 무엇이라 중얼거리더니 거실로 갔다. 베란다를 한참 보더니 손을 내 저었다. 베란다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다 싶어 에이전트에게 당신이라면 이 집에서 살 수 있겠느냐며 거리의 자동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답은 없고 피식 웃었다. 얄밉고 괘씸했다.  
이 때 나의 뇌리를 스친 것은 이중창을 한다고 하여도 큰 효과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살수는 없지 않는가. 통풍 하나는 좋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인데...
에이전트는 집 주인에게 말하여 어떤 결정이 나면 연락 하겠다면서 갔다.
나는 여유가 생겼다.
집주인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이중창 기술자를 보냈다는 그 자체가 소음피해를 스스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향후 있을지도 모를 법적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고 자평했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더 향기롭다.  

그로부터 닷새 뒤 에이전트의 전화는 뜻밖이었다. 주인이 아무것도 하여줄 수가 없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내용이다.
또 뒤통수를 맞았다는 기분에 난감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
시끄러워서 못 자고 울화통이 터져서 못 자고 이래저래 번민의 시간만 차곡차곡 쌓여 갔다.
대사관에 전화하여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아무것도 못해 주겠다며 배짱을 내민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복안을 말했다.
이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카드는 집세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당장 이 달부터 집세를 주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럴 경우 주인이 고발하면 형사처벌를 받게 되느냐고 물었다.
어디까지나 민사문제인데 그럴 리는 없다고 했다.
하도 법 법하기 때문에 혹여 말도 안 되는 법도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고 했다.
그 분은 내가 내어놓은 대응책이 무척 당혹스럽고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계약서를 팩스로 한 번 보내주시겠습니까 한 번 살펴보게요.’
‘아닙니다. 저가 바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뵙고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요’

다음 날 나는 계약서를 챙겨 아내와 함께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NEWTON MRT 바로 곁에 ‘골드 벨 타워’가 금 방 눈에 들어왔다.
민원실은 태극문양의 갖가지 소품과 동양화가 우리를 반겼다.
달랑 두개뿐인 민원창구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이 상담하고 있었다. 민원창구 안쪽에 대사관 사무실이 있는 것 같았다. 빌딩에 세 들어 있는 모습이 초라했다. 나라 크기나 교민들의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버젓한 자체 건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그렇고 친절한 그 분은 어떻게 생겼을까?
민원창구 저편에서 한껏 미소를 머금은 중년 부인이 나온다. 친절이 몸에 베인 모습에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영락없는 친근한 이웃 아줌마였다. 꽁꽁 얼어붙었던 차가운 나의 마음이 한순간에 데워 졌다.
첫 인사는 ‘심려를 기처 죄송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서로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얼른 계약서를 꺼내 주었다.
차근히 읽어보더니 ‘계약서로 대항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임차인이 계약 내용을 알았든 몰랐든 일단 서명하면 이의를 달수가 없습니다.’
억장이 무너졌다.      
이렇게 하여 그 분을 만나 볼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많은 폐를 끼쳤다.
대한민국의 으뜸 공복을 만나 좋았고 대한의 국민임에 자부심도 느꼈던 만남이었다.  

이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실력행사다.
그들의 ‘어거지 법’에는 나의 ‘떼 법’으로 맞서는 길밖에 없었다.
집세 주는 19일이다. 여느 때 같으면 받아가라는 통보를 하는 날인데도 하지 않았다. 에이전트 역시 보름이 지나도 집세에 대한 말이 없다. 오히려 불안하다. 법적조치라도 하는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떤 불이익이 다쳐 온다 해도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이다. 단단히 다잡아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흘러간 어느 날 에이전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집세를 보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단 말을 걸어 나의 속내를 떠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불면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치료비를 청구하려고 한다.’ 생판 엉뚱한 소리로 응수했다.
이어서 해약을 해 주지 않으면 디포짓이 걸려있는 두 달만 살다가 나가겠다고 한 술 더 떴다.
전화상 우물쭈물하더니 꼭 해약을 하고 싶다면 집을 세놓고 나가라고 했다. 우리가 세를 놓는 경우에도 디포짓은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더욱 기가 차는 대목은 우리가 세를 놓든 자기들이 세를 놓든 지금의 집세보다 적게 놓았을 때는 그 차액을 우리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3,300불인데 3,000불에 세를 놓았다면 차액 300불☓잔여기간 20개월=6,000불을 내놔야 한다는 싱가포르 셈법이다.
나는 한마디로 거부했다.
내가 살 수 없는 집을 누구에게 사기 치라는 것이냐며 쏘아 붙였다. 그리고 도대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했다. 주인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 얼굴도 모른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마음은 초조하고 답답했다.
매사는 순리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엇박자의 길을 가야하는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렸다. 그것도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그들 나라 사람과 싸움을 벌려야 한다는 게 바보짓인지 무모한 도전인지 내 스스로 의문이었다.
  또 며칠 뒤 제안이 들어 왔다. 방음조치를 하려면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집 주인이 해 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매 한가지 말만 되풀이 했다.
이제 끝을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마련해 두었던 몇 가지 대안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답안을 골랐다.
계약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단서도 붙였다.
계약 기간 만료 두 달 전에 통보하고 그로부터 두 달 뒤에 해약 정산한다는 싱가포르 법(?)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즉 12달이 되는 그 날 나가는데 동의하는 확인서를 가져오면 집세를 주겠다고 했다.
단호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주인과 상의하겠다는 대답이다. 어쩌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3일 뒤 주인의 확인서를 받아서 가겠으니 집세를 준비하여 두라는 했다.
이 전화를 받고서야 안도의 한 숨을 길게 쉬었다.
아내는 그동안 나보다 훨씬 더 마음 조이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시비 붙지 말고 조용히 지내다가 가자고 했다.
낸들 어디 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가.    
  
  드리는 말씀 : 나는 이 일을 통해 ‘정보 사회’임을 새삼 절감했다.
내가 일찍 ‘한국촌’을 알고 집을 얻었더라면 이런 고초를 덜 겪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한국촌’이라는 교민들의 널따란 정보마당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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