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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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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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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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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시비와 소음전쟁-(1)

몇 날 동안 까맣게 모르고 지내던 뜻밖의 일이 불거졌다. 지독한 소음이다.
시끄러운 것 같기는 한데 무엇이 뭔지 꼬투리를 잡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갔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눈앞에 맞닥뜨린 에어컨과 모기라는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내 두뇌는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은 생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자극을 받아야만 특정 생각과 감정이 발생한다는 ‘삼중뇌’ 중의 변연계인가 싶다.
어떻든 나의 뇌 속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자동차의 굉음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엔진소리와 진동음은 24시간 동안 단 한 시간의 배려도 용납되지 않았다.
덩치 큰 2층버스와 굴절버스의 소리 울림은 탱크가 굴러가는 듯 내 머리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오토바이족들의 그 못돼먹은 버르장머리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오토바이의 찢어질 듯 내지르는 날 선 소리는 과히 금메달감이다. 도로는 그들의 폭발음 경연대회장이다.
어디 이뿐인가? 사흘이 멀다 하고 거리를 누비는 꽹과리도 한 몫 거든다. 무슨 축제가 그렇게도 많은지 죽는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하도 요란스러워 거리를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4톤 트럭 크기에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그 사이에 스무 명도 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징과 흡사한 타악기를 힘껏 두들긴다.
이웃에 위치한 HDB에서는 초상이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손자가 ‘왜 사람이 많이 죽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다. 그 때마다 장례행렬차량과 악대는 소음의 진수를 뽐낸다. 심한 소음이지만 장례소음은 차라리 나에게는 한 순간 진정제 역할을 한다.
‘아옹다옹하다가 저렇게 가는 것이 인생인데...‘
잠깐 스쳐가는 독백이다. 연애편지를 대필하던 소년시절도 있었던가?
지금 이 시점은 소음 때문에 잠 못 이루며 낑낑대는 노인네일 뿐인데 왜 10대의 그 때 그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윙윙 우당탕퉁탕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린다. 마치 지진이 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이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도대체 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다. 귀가 울려서 금방 두통이 나고 현기증이 난다.
그런데 얄밉도록 이상한 현상은 아이들과 아내는 시끄럽다는 인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괜찮은 데요.’ 아내는 ‘그런대로 살아야지 도리가 없지 않소.’ 나는 ‘이래서 바보가 되는구나.’ 삼인삼색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손자들이 소음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게 어쩌면 큰 다행인 줄도 모르겠다.

시끄럽다는 인식이 강하게 부각될수록 참고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소리를 줄일 수 있을까? 무슨 수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와 고민과 분노의 뇌가 동시에 작동한다.
‘해약을 한다. 이중창을 만든다.’ 전자는 이곳 법상, 후자는 콘도의 구조상 거의 불가능한 몽상이다.
화살은 이내 아내에게 돌아간다.
‘이게 집이라고 얻었소?’
‘아니 당시 상황이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었거니와 커튼 쳐놓고 에어컨 틀어놓는데 소리가 들릴 리 없지 않소.’
아닌 게 아니라 창문 닫고 커튼 치면 소리는 반감된다.
아무리 참아보려고 애를 써도 들리는 소리를 막을 길은 없다. 게다가 바람은 어찌나 잘 불어주든지 창문만 열어 놓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루 종일 집안을 통풍시켜야 마음이 개운한 성질인데 하물며 이 더운 나라에서야 문을 닫고 에어컨만 틀어 놓는다는 것은 턱없는 일이다.

집의 위치가 소음이라는 소음은 다 몰아와 한껏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삼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량행렬은 24시 그칠 줄 몰랐고 횡단보도까지 세 곳이나 있어 멈췄다가 출발하는 소음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 종일 귀가 멍하니까 100데시벨은 족히 넘을 것이다.
손자들처럼 소리에 무감각한 방법은 없는지 아내의 생각처럼 듣고도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는지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자신과의 전쟁을 했다.
바깥의 소음보다 음악이 낫다싶어 귀에 MP3를 꼽고 흘러간 노래에 몰입했다. 단 몇 분의 효과는 있는 것 같으나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두 번이다. 밤이면 귀막이 눈가리개를 하고 잠을 청해본다. 내 평생 처음 해보는 이상한 이 짓거리도 소용이 없다.
탱크부대가 이동하는 굉음은 하루 종일 이국의 늙은 나그네를 괴롭혔다. 밤낮이 따로 없다. 찰거머리처럼 착 달아 붙어 영 떨어지지 않는 징그러운 괴물이다.
한 보름을 더 참으며 온갖 묘안을 찾아봐도 내 재주로서는 답이 없다.
어쩔 수없이 현지인 에이전트에게 연결시켜준 싱가포르 사람에게 전화를 내 봤으나 에이전트와 의론해 보라는 대답이 전부다.

여기서 이 집을 얻게 된 동기를 말해야 이해가 되겠다.  
하숙집을 나와 기러기 엄마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우리 손자들은 그 집 초등학생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못해 옮기게 됐다. 그 때 마침 손자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던 투션 선생님이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고 제안했다.
딸만 둘이 있는 그 집에서 두어 달은 그런대로 지냈으나 초등학생 딸 때문에 더는 데리고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유는 자기 딸의 질투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딸아이 아빠가 우리 손자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래의 괴롭힘으로 두 달, 딸아이의 질투로 섣달,
참 어이없는 이유로 계속 옮겨 다니는 떠돌이가 되었다.<다음 기회에 쓰려고 한다>
금쪽같은 손자들인데 천덕꾸러기 신세가 웬 말인가?
이제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내외가 싱가포르에 가서 손자들을 거둬야 된다고 나선 것이 콘도를 얻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문제의 이 콘도를 얻게 된 경위는 또 이렇다.
한국인 에이전트에게 콘도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 하였더니 소개비로 한 달 치 월세를 달라고 하더란다. 그때 마침 홈스테이(중국어 투션선생의 집) 아저씨가 현지인 에이전트에게 부탁하면 소개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하여 주더라는 것이다. 3000불 이상 덕을 본다니까 귀가 솔깃했던 것은 당연지사다. 그가 소개 시켜준 현지인 소개인이 지금의 콘도 에이전트다. 정보를 줘서 몇 천 달러 덕을 보았다며 홈스테이 아저씨에게 사례금도 주었다.
그게 오늘의 화근이 될 줄 몰랐다.
셋집에 대한 아무 정보도 모르던 터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에 알고 보니까 2년 계약에 월세 2500불 이상이면 세입자는 에이전트피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한국인 에이전트는 왜 소개비 전액을 요구했을까? 지금도 안타깝다.>

  에이전트에게 손녀가 전화했다. 할아버지가 시끄러워 살 수 없으니 무슨 조치를 해 달라고 했다. 반응은 없다. 사흘이 멀다 하고 서 너 번쯤 전화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실로 어안이 벙벙했다. 계약 기간인 2년간의 월세 66,000불(월세 3,300불)를 내고 보증금 6,600불도 포기하면 해약을 해 주겠으니 나가라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그러나 일단 참았다. 그리고 제안했다. ‘보증금은 포기하겠다. 에이전트 비용도 전액 변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헛소리 말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제부터 타협은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오기가 생겼다.
아내는 괜히 전화하여 관계만 나쁘게 만들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남의 나라에서 싸워봐야  결국은 질게 뻔하고 자칫 잘 못되면 아이들 유학도 못하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싱가포르 법에 그런 것은 없어,’
‘당신이 어떻게 알아?‘
‘어느 나라든 법의 정신은 똑 같은 거야.‘
‘한국에서나 통할 말이네요.’
‘당신도 귀가 멍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1년도 아닌 2년을 어떻게 견디고 살겠다는 거야 세상에 이런 경우는 없어.’
아내와 나는 이렇게 주고받으며 서로의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아내는 분명 영감이 무엇인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불안감에서 짐짓 부아를 질렸을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중얼대며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렸다. 도저히 앉아서 분을 사킬 수가 없었다.
이제 시위는 활을 떠났다.  물러날 내가 아니다. 오기보다 사실이 그랬다.

우리 손자들의 가디언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역시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나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한국인 부동산 에이전트와 만나 의론해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에어전트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일단 통화를 해 보라고 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속담이 실감나는 판국이니 지체할 리가 없다. 여자 분이 받더니 나의 전후사정을 들었다. 그리고 언제 날짜 잡아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 때 나는 ‘해결의 방법이 있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계약서를 챙겼다. A4 용지 15장이다. 무슨 쓸 내용이 이렇게도 많은가? 이게 바로 한국 사람들 잡는 조항들인가? 우리나라 같으면 전세/월세 표준 계약서 1장이면 끝나고 좀 까다로운 사람들이라면 특약내용 1장이 별첨되면 그만이다. 물론 중개업자의 확인서 1장에 붙으니까 기껏해야 2장에서 3장이다.
아무리 뒤적거려 봐도 알아챌 수 있는 내용이라야 계약 기간 2년, 월세 3300달러가 전부다. 그 밖엔 단 한 문장도 해석할 수가 없다. 이를 두고 눈뜬장님이라고 했던가.
계약서의 긴 조항만큼이나 나의 가슴은 답답해 졌다.
며칠 뒤 가디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점심시간을 잡았다. 아내와 탄종파가의 어느 한국 식당에 나갔다.
30대 후반의 여자 분이 왔다. 식사 주문을 하고 집을 얻게 된 동기에서부터 지금의 소음 상황을 소상하게 다시 설명했다.  그리고 도와 달라고 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 해약을 해야 하겠다고 했다.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계약서는 슬쩍 훑어보고 나에게 돌려주었다.
당초 계약서를 변호사에게 보여주고 상의를 해 보겠다고 하였었는데 전작 만나니까 변호사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없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그녀도 그런 것 같다. 어색한 만남이 되었다. 비싼 점심값만 날리고 아무 수확도 없었다.
이렇게 며칠을 전전긍긍하던 중 어느 분이 말했다.
외국인과 계약을 할 때는 통역이 동석한 가운데서 계약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데 동의하는 서명에 통역인도 참여해야 법적 효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이런 합법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해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세상이치에 딱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희망이 부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손녀에게 에이전트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드리는 말씀 : 너무 길어 나누었습니다. 그저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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