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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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영원한 우상, 애거시에게 받치는 연서...(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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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남자] (john2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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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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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의 뉴욕은 테니스의 물결로 뒤덮인다. 퀸즈 플러싱 메도에서 한 해의 마지막 메이저대회이자 세계 테니스 스타들의 총집합 대잔치인 US오픈이 열리기 때문이다. 4개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상금도 가장 많은, 그래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대회가 US오픈이다.
드라마틱한 것을 워낙 좋아하는 미국인들로선 이번 US오픈에서 미국 테니스 스타 앤드리 애거시(35)가 우승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1986년에 처음 US오픈에 참가한 애거시가 참가 20년만이자, 911의 4주년 기념일에 세 번째로 US오픈을 우승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뜨거웠다.
하지만 애거시는 `현재` 세계 최강 페더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호들갑스런 언론은 벌써부터 은퇴설을 거론한다. 페더러에게는 피트 샘프라스가 세운 남자 메이저 대회 최다승 기록인 14승을 깰 선수라며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쓴다는 둥, 결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는 둥 찬사 일색의 보도를 하는 것과 딴판이다.
실제 애거시는 결승전 후 "뉴욕에 감사한다"며 "정말 대단한 20년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해 은퇴를 조만간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는 US오픈 32강전을 직접 관람했다. 당시 페더러는 프랑스의 파브리스 산토로를 맞아 3-0으로 가볍게 완파했고 애거시는 체코의 토마스 베르디치에게 먼저 한 세트를 내준 후에야 승리할 수 있었다. 굳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을 따르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본 애거시의 플레이는 확실히 과거에 비해 힘이 빠져 있었다. 기교 측면에서는 아직 세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애거시지만 서브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전형적인 베이스러너 답지 않게 발놀림도 느렸다.
이후 결승전까지 애거시와 페더러의 궤적을 비교하면 페더러의 승리가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페더러는 16강에서 니콜라스 키퍼에게, 4강에서 레이튼 휴이트에게 각각 1세트씩만을 내줬을 뿐 그 외 모든 경기를 3-0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다. 반면 애거시는 16강의 자비에르 말리세, 이번 US오픈 최대 빅 매치였던 8강의 제임스 블레이크, 4강의 로비 지네프리 등 모든 상대를 풀 세트 접전 끝에 물리쳤다. 무려 11살이라는 애거시와 페더러의 나이 차이, 남아도는 체력을 `비축` 까지한 페더러와 가뜩이나 모자라는 체력마저 다 `소진`한 애거시의 싸움은 애시당초 승패가 결정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은퇴는 이르다. 만 서른다섯의 나이에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른 것도 대단하니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하라고? 테니스 팬으로서 결사반대다.
애거시의 영원한 숙적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피트 샘프라스는 2002년 US오픈 결승에서 애거시를 꺾고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한 뒤 은퇴했다. 그러나 샘프라스도 2002년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려야 했다. 샘프라스는 2000년과 2001년에도 US오픈 결승에 올랐지만 2000년에는 마라트 사핀에게, 2002년에는 레이튼 휴이트에게 우승을 뺏겼다.
물론 당시 샘프라스의 나이는 31살로 지금 애거시의 나이보다 약간 젊다. 그러나 1970년대 호주 테니스 선수 켄 로즈웰은 35세의 나이로 US오픈에서 우승했다. 로즈웰은 2년 뒤 호주오픈에서도 우승했고 1974년에는 무려 39세의 나이로 또다시 US오픈 결승에 오른 바 있다. 로즈웰이 한 일을 애거시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애거시는 나이가 들수록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무이한 테니스 선수다. 지금까지 8번의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획득한 애거시는 그중 절반이 넘는 5개를 모두 테니스 선수로서 물리적 전성기를 넘긴 29살 이후에 석권했다.
골프나 야구와 달리 삼십이면 환갑 노인 취급을 받는 테니스 계에서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애거시의 경기 스타일이 나이와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팔팔한 시절에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그 때의 애거시는 지금보다 잘하지 못했다. 현재의 그가 무서운 이유는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애거시는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랠리를 해서 상대방의 실수를 유발한다. 자신의 실수로 점수를 내 준 만큼 상대방은 자괴감에 빠지고 이후 연속으로 무리한 샷을 남발하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8강전 당시 마지막 세트에서 게임 스코어 5:2로 앞서나가 1게임만 더 얻으면 승리할 수 있었던 제임스 블레이크가 애거시에게 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외에도 애거시의 은퇴를 반대할 이유는 많다. 현재 여자 테니스 계는 비너스-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벨기에 듀오 쥐스틴 에넹-킴 클리스터스, 마리아 샤라포바-엘레나 데멘티에바-스베틀라나 쿠츠네초바 등을 앞세운 러시아 미녀군단 등이 전형적인 군웅할거 장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남자 테니스 계는 다르다. 페더러와 같은 또래 중에서는 그의 경쟁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앤디 로딕은 압도적인 서브를 선보이고 있지만 실수가 많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레이튼 휴이트는 스트로크에서 페더러에게 역부족이다. 마라트 사핀은 파워 측면에서 페더러에 대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수지만 부상이 잦아 메이저 대회 출전조차 드문드문 하고 있는 형편이다. 올해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19세의 라파엘 나달이 각광받고 있지만 클레이 코트와 달리, 하드 코트와 잔디 코트에서 나달의 능력은 전혀 검증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거시까지 은퇴한다면 남자 테니스 계는 그야말로 페더러 천하가 될 것이다. 사실 관객의 측면에서 1990년대는 무척 재미없는 시대였다. 남자는 피트 샘프라스가, 여자는 슈테피 그라프가 대부분 우승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한 사람이 메이저 대회 우승을 싹쓸이하는 모습을 봐야하다니 테니스 팬에게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부, 명예, 대기록, 그리고 부인까지......테니스 선수로는 이룰 것 다 이루고 얻을 것 다 얻은 애거시다. 그런 그가 테니스가 좋아서 아직까지 코트에 남아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는 샘프라스보다 6번이나 적지만 애거시는 샘프라스도 이루지 못한 그랜드 슬램(4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현역 선수다. 샘프라스의 기록을 깰 수 있다지만 페더러 역시 유난히 프랑스 오픈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랜드 슬램 달성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애거시는 이미 6년 전 그랜드 슬램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코트에 남아 세 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더 일궈냈다. 그리고 지금도 조카뻘 되는 선수들에게 도전하거나, 또는 도전을 받고 있다. 어찌 대단하지 않은가. 꼭 우승을 하지 않더라도 애거시가 코트에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비단 기자 하나 뿐이 아닐 것이다.
애거시만큼 테니스 외적인 면으로 많은 관심을 모은 선수도 드물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는 화려한 귀걸이와 유니폼으로, 20대 중후반에는 브룩 실즈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이후에는 슈테피 그라프와의 행복한 결혼생활로 연일 유명세를 탔다. 이제는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이유로 언론지상을 장식하는 애거시가 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건 대머리 아저씨에게 바치는 일종의 연서(戀書)다.
댓글목록
[나쁜남자]님의 댓글
[나쁜남자] (john2878)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곳이 찡해지네요.
제가 평소에 애거시를 무지 조아라 하지만, 애거시를 이렇게
잘 표현한 글은 처음 보는듯하여, 올립니다.
최근, 물론 패더러의 시대이긴 하지만, 전 아직도 포핸드와
양손 백핸드를 애거시 만큼 간결하면서도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를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최고의 라이벌인 샘프라스가 떠난 코트를 혼자 꿋꿋이 지키며, 자기보다 한세대 어린 선수들에게 도전 받고 도 도전하고 있는 애거시에게 박수를 보냅니다.